조선 24대 헌종의 능인 경릉(경기 구리시) 전경. 왕릉 입구인 홍살문(①)에 선 참배자는 정자각(②)에 가린 봉분(③)을 볼 수 없다. 조선 왕릉은 참배자가 올려다보며 느끼는 존경심과 죽은 자가 사방을 굽어 살피는 듯한 시선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사진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
홍살문 뒤 정자각이 시선 차단
王의 영혼에 신비-경외감 심어
조선 왕릉은 산등성 끝자락의 완만한 언덕에 있다. 죽은 자의 성스러운 영역인 봉분은 제향 공간인 정자각에서 왕릉 입구인 홍살문에 이르는 산 자의 영역보다 높은 곳에 있다. 홍살문에 들어선 참배자가 봉분을 올려다보며 자연스럽게 존경과 위엄을 느끼도록 조성된 것.
그런데 이상하다. 11대 왕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서울 노원구 공릉동)은 홍살문에 서서 이리저리 올려다봐도 참배 대상인 봉분이 보이지 않는다. 봉분과 홍살문 사이에 있는 정자각이 시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에 조성 원칙은 일정하지 않다. 봉분 높이도 해발 27∼260m로 다양하고 정자각과 봉분의 높이 차도 9∼39m에 이른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는 평평하기도 하고 경사지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 왕릉 어디서나 홍살문에서 정자각이 봉분을 가리는 양상은 같다.
홍살문에 선 참배자의 눈높이(150cm)에서 정자각 지붕을 향해 일직선을 그어 생기는 수직각 안에도, 홍살문 중앙에서 정자각의 양끝을 향해 그어 생기는 수평각 안에도 봉분은 어김없이 숨는다.
이창환(조경학) 상지영서대 교수가 조선 왕릉 40기를 실측한 결과 수직각은 5.3∼16.2도, 수평각은 6.5∼18도로 나타났다. 수직각과 수평각은 조선 후기에 이를수록 커지는데, 봉분에서 정자각까지 거리가 짧아지는 것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거리만 300척(약 90m)으로 정한 뒤 그리 크지 않은 1층짜리 목조건축물인 정자각의 높이와 폭을 자연 본래의 지형에 따라 절묘하게 조절해 ‘시선의 폐쇄성’을 유도한 것이다.
이런 폐쇄성은 신(神)의 정원인 왕릉의 성역화와 신비감을 배가한다. 유교문화권인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왕릉과 중국 황릉에서 봉분 주위에 여러 채의 건물이나 높은 벽을 세워 인위적으로 시선 차단 효과를 노린 것에 비해 간결하고도 탁월한 장치다.
정자각을 지나도 봉분은 쉬이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정자각 뒤편에는 푸른 잔디가 덮인 또 다른 언덕인 사초지(莎草地)가 조성돼 시선을 가로막는다. 사초지 너머로 봉분의 봉긋한 윗부분과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 봉분 주변 조각들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사초지를 통해 봉분에 올라가려면 가파른 경사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다. 능을 지키는 참봉이 봉분에 올라가며 왕의 영혼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왕의 영혼이 잠든 봉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의 느낌은 정반대다.
봉분 좌우와 뒤를 감싼 곡장(曲墻)은 눈높이보다 낮다. 곡장은 봉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먼 산까지 시야에 들어오도록 트여 있다. 정자각은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조선 왕릉은 이처럼 참배자 입장에서는 폐쇄적이지만 죽은 자의 시각에서는 사방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로 돼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존경을 느끼는 앙감(仰感)과 위에서 내려다보며 굽어 살피는 느낌의 부감(俯感)을 조화시켜 시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