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연세대 의류환경학과 강의실.
이 학과 4학년 최임정(25)씨가 조원들과 함께 만든 가상의 의류브랜드와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었다.
최씨는 발표 내용을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인 '파워포인트'로 제작했다. 빔 프로젝터가 쏘는 큰 화면은 다양한 그래픽과 동영상, 음향으로 채워졌다.
발표가 끝나자 담당 교수인 이주현(49) 교수도 기존 의류 브랜드에 대한 내용이 담긴 영상물을 보여주며 학생들의 발표내용과 비교해줬다.
학생들의 시선은 스크린을 떠날 줄 몰랐다. 수업을 듣는다기 보다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같은 시기 B대학의 한 강의실.
담당 교수는 교재를 읽어가며 중간 중간에 필요한 설명을 더하고 있었다.
중요한 내용은 화이트보드에 썼다.
고개를 숙이고 교재를 따라 읽어 내려가던 학생들은 책에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필기를 했다.
최근 대학가에서 때 아닌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현란한 그래픽과 동영상, 차트, 음향 등으로 꾸며지는 '멀티미디어형' 강의와 '판서', '강독'으로 이뤄지는 '조용한 강의'가 공존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학생들은 강의 내용이 담긴 파일을 다운로드 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기 위한 '노트북 컴퓨터'와 화이트보드에 교수가 적는 내용을 필기하기 위한 '노트북' 등 두 가지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다니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양보람(22·숙명여대 국문과)씨는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학생들은 받아 적는 강의는 솔직히 괴롭다"고 털어놨다.
'멀티미디형' 강의를 선호하는 학생들은 전공필수 과목의 교수가 '강독형'인 경우 나름대로의 'IT기법'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K대학 박 모(23)씨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이트보드를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는다.
박씨는 "읽고 쓰는 일은 강의실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없는 강의는 솔직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시백(23·동국대 중어중문학과)씨도 "공자 왈, 맹자 왈 원론적인 이야기만 길게 늘어놓는 강의는 기피한다"며 "학생들도 발표할 때 파워포인트를 쓰는 게 당연시 되고 있는 마당에 리포트를 써서 내야하고 교재 읽기만 하는 수업은 몰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읽기와 필기를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올해 복학한 강 모(25·성균관대)씨는 IT기기를 쓰지 않는 교수의 강의 위주로 신청한다.
가을학기에 수강 신청한 강의 중 멀티미디어형 강의는 '마케팅관리' 한 과목뿐이다.
강 씨는 "멀티미디어형 강의는 대부분 토론과 조별 발표 등을 많이 시켜서 부담스럽다"며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을 조용히 따라 읽고 받아적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고민에 빠졌다.
한 강사는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수업을 하려면 준비 시간이 두 배 이상 필요하다"며 "하지만 교육효과가 높은데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아 '멀티미디어'형 강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공연을 보러오는 기분으로 수업을 듣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충주대 이모(40) 교수는 "학생들이 진지하고 깊이 생각하는 강의는 참지 못 하고 요점을 간단히 정리한 수업,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수업만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