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수사대 ‘경제위기설’ 주시 최근 경제위기설이 인터넷에 집중적으로 유포되자 3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사이버범죄수사대 김종섭 대장(왼쪽)과 수사관들이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뜬 글을 캡처한 화면을 보며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주식 빌려서 팔고, 주가 떨어지면 다시 사
‘逆시세차익’ 노리고 악소문 퍼뜨리는 듯
기업-개인투자자 피해… 금감원 단속 나서
올 6월 12일 1만8400원이던 대우건설의 주가는 7월 17일 1만850원까지 내려갔다. 한 달여 만에 무려 40% 이상이 빠진 것. 물론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공격적 기업 인수로 그룹의 재무 부담이 커졌다는 악재는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상한 소문’들이 더 문제였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가 대우건설을 다른 회사에 재매각한다거나, 심지어 검찰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우리 회사를 내사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며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세력이 대우건설 주식을 공(空)매도한 세력이라고 의심했다. 해당 기업의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공매도 세력들이 일부러 흉한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 이 관계자는 “당국에 의뢰해 본 결과 루머의 진원지가 홍콩 등 해외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이 왔다”며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도 최근 증시 불안기에 악성 루머의 공격을 받았다. 이 회사의 주가는 6월 한때 3만 원을 넘었지만 9월 1일 1만7200원까지 주저앉았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는 소식에 맞춰 회사가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공매도를 쳐놓고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LG전자도 9월 첫날 휴대전화 부문의 8월 영업이익률이 8%까지 떨어졌다는 루머가 증권가에 퍼지면서 당일 주가가 10% 가까이 급락했다. 회사 측은 “이익률이 두 자릿수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주가는 이미 한참 짓밟힌 다음이었다.
○ 약세장에 민감한 투자자들 자극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에서 주식을 빌려(대차거래) 파는 것으로, 이론적으로 대차거래는 가격 안정에 기여하며 증권의 유동성도 높여 준다. 하지만 악성 투기세력이 루머를 퍼뜨리는 등 불법적인 가격 조작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선의의 개인 투자자들. 해당 기업도 이미지나 정상적인 기업 경영 활동이 망가진다.
과거에 주가조작 세력은 보통 주가를 끌어올리는 허위 정보를 유포하곤 했다. 대상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후 “어느 기업을 인수한다더라” “신약·신제품을 개발한다”는 소문을 내 주가가 폭등하면 시세 차익을 챙기고 떠났다. 지금은 반대다. 같은 거짓소문이라도 악소문은 만들어 내기가 훨씬 쉽고 전파 속도도 빨라 주가 조작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최근 ‘9월 위기설’ 등으로 투자자들이 잔뜩 민감해진 시기에 이런 개별 기업의 유동성 위기설은 자본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들은 루머에 대한 사실 확인도 되기 전에 이들 기업의 주식을 투매하다시피 하고 있다. 한 대기업의 IR 담당자는 “요즘에는 ‘유동성’이란 세 글자만 나와도 바로 투매 대상이 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던 K사 관계자는 “기업 부도설의 경우 여의도 증권가에서 자주 쓰는 인터넷 메신저나 정보지 등을 타고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며 “그러면 불과 몇 분 뒤에 ‘회사에 무슨 문제 있느냐’는 전화가 줄을 잇는다”고 말했다.
○ 당국, 집중단속 나서
피해 기업이 늘어나자 금융감독원은 3일 특정 기업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유포하는 행위를 적발하는 ‘시장 악성루머 합동 단속반’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공매도 세력의 90%가 외국인 투자가이고 10%가 국내 기관투자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4억5000만 주였던 대차거래 잔액은 이달 초 8억600만 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공교롭게도 최근 주가 급락의 아픔을 겪은 하이닉스, LG전자, 대우건설의 잔액이 유독 많이 늘었다.
공매도는 해외에서도 문제다. 미국 정부는 7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등 최근 주가가 폭락한 일부 금융회사에 대한 허위 정보가 유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0여 개 금융기관의 주식에 대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기도 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공매도: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대차거래) 시장에 파는 투자기법.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시장에서 매입해 되갚아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주가가 상승하면 손해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