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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입력 | 2008-09-04 02:59:00


우리에게 가까운 이웃이 있는가, 물론 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등. 우리에게 가까운 친구가 있는가? 글쎄….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주위에 친구를 갖지 못한 나라라고 비판한 사람은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난여름 온 국민에게 큰 기쁨과 자랑을 안겨준 베이징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는 불행히도 이젠 우리도 이웃에 친구가 있느냐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좀 난감하게 됐다.

가까운 이웃만이 아니다. 한동안은 가장 멀리 있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미국과의 우의도 위태위태할 뻔했다가 근래에 와서야 가까스로 원상을 회복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있고 그 말에 일면의 진리는 있다.

그러나 분단국가로서 언젠가는 통일을 이룩하려 한다면 친구의 존재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한가로운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에 인구 8000만 명의 통일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적극 도와주진 않는다 해도 적극 반대하지 않을 정도로는 이웃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통일의 전제가 된다. 그것을 동서독의 통일과정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통일 위해 인접국과 좋은 관계를

우리는 왜 친구를 갖지 못할까. 대외적인 국제관계에서만이 아니다. 대내적인 사회생활에서도,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LG경제연구원이 20대에서 50대의 직장인 359명을 설문 조사해서 ‘우리나라 직장 내 프렌드십 진단’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내의 ‘토종 기업’과 국내의 ‘외국기업’ 종사자를 함께 조사한 이 보고서는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7명 중 1명은 직장 안에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기업 구성원의 14%가 외톨이로 느낀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외국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8.6%만이 친구가 없다고 대답했다. 국내 기업 종사자가 사내의 친구라고 밝힌 평균 숫자가 2.46명인 데 비해 외국계 기업 구성원의 그것은 3.09명으로 역시 국내 기업 통계를 웃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닌 듯싶다. 오히려 친구를 갖는다는 것, 또는 우정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인식 내지는 평가에서 필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이다.

작가 이문열은 오래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에세이 ‘성년의 오후’에서 우리 사회에서 우정과 우정론이 소실해가고 있음을 지적한 일이 있다. “…요즘 들어서는 그 흔한 명사들의 청소년을 위한 강론에서조차 그러한 (우정의) 주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인 고은은 최근 한 잡지에 연재하는 일기 ‘바람의 기록’에서 선배 문인들의 우애를 기리며 “이런 우정의 연대가 이제 없다… 우정은 우정이라는 말이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것에 위로받아야 한다”고 격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그의 비(非)존재를 모르고 지내는 사이 섬세한 감성의 문인들은 스러져간 우정의 세계를 이렇게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정이란 예전엔 튼실하게 존재했던 것이 근래에 비로소 스러져간 것일까. 그렇게는 잘 생각되지 않는다. 우정을 소중히 여긴 전통문화가 소실됐다기보다 우정을 소홀히 여긴 전통문화가 끈질기게 이어져 오면서 사회의 산업화와 더불어 더욱 심화되지 않았을까.

사회생활서 밀려난 우정의 윤리

19세기 말까지의 우리나라 고전문학 작품을 읽어보고 가장 놀라웠던 발견은 한국의 전통 소설에는 전혀 ‘친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구운몽’ ‘창선감의록’과 같은 양반 문학에나 ‘춘향전’ ‘심청전’과 같은 서민 문학에나 다 친구가 등장하지를 않는다. 한국의 전통문학 작품이 단조롭고 지루한 것은 소설 공간에 주인공과 대등한 타자로서의 친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군신, 부자, 부부와 같은 종적인 삼강(三綱)의 윤리가 특히 강조됐던 전통사회에서 횡적인 인간관계를 규범하는 우의의 윤리가 뒷전에 밀려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추세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등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선 보다 더 친구의 존재, 우정의 윤리가 앞으론 빛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