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캠페인에 10대 임신 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러닝메이트 세라 페일린 씨의 17세 고교생 딸이 임신 5개월로 밝혀지면서다. 페일린 씨는 “(아기를 낳기로 한) 딸의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운증후군 아들을 출산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미 대선은 이라크전쟁이나 경제 정책 같은 대형 이슈 못지않게 낙태나 총기 소지 찬반 등 가치관 대결로 치러진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진보 매체들은 매케인 선거캠프의 검증 허점과 페일린 씨의 자질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 신문은 임신한 딸 문제가 그동안 은폐됐고, 이 사실이 폭로된 후 서둘러 아기 아빠와의 결혼이 추진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가족과 생명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보수주의자가 어떤 가정교육을 했기에 고교생 딸이 임신까지 하게 됐느냐는 투다. 부통령후보 낙마론도 거론된다.
▷하지만 페일린 씨 측이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상당수 유권자가 페일린 씨가 겪고 있는 가족문제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청소년의 40%가 14세 이전에 순결을 잃으며 15∼19세 소녀의 절반 이상이 한 번 이상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한다. 피임약 보급에도 불구하고 매년 75만 명의 소녀가 임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10대 임신에 이해심을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지난해 10대 임신을 다룬 영화 ‘주노’가 대히트를 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아무튼 페일린 씨 딸의 임신 문제는 여성의 표심(票心)에 영향을 줄 것이다. 매케인 후보가 페일린 씨를 러닝메이트로 고른 것은 자신이 고령이란 점과 여성 표를 염두에 둔 전략이다. 현재로선 어느 정도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페일린 씨의 부통령후보 지명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유권자의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낙태 지지’ 때문임을 감안할 때 ‘가족가치’를 강조하는 페일린 씨가 힐러리 의원 지지자를 얼마나 끌어들일지는 미지수다. 여성으로서 낙태를 지지할 것인지, 엄마로서 10대 딸의 임신을 받아들일 것인지, 미 대선은 여성의 마음을 시험하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