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바닥’과 싸우며 살아간다. 각기 처한 세계와 삶의 바닥이 다 다르므로, 누구도 다른 사람의 바닥에 관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닥에서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 ‘바닥을 딛고 굳게 일어선 사람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이거나 현재이거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닥은 또 다른 바닥과 연결되고, 바닥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를 깊이 연민하며 소통한다. 시가 그 일을 돕는다.
정호승은 ‘바닥의 시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 시대와 사회, 개인의 어두운 바닥에 관해 노래해 왔다.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대에 그는,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서울의 예수’)음을 보았고, 끝없는 나락의 무저갱(無底坑)과 같은 삶을 통과하면서는 ‘소금물을 마시며/썩은 내 창자를 꺼내 나뭇가지에 걸어두’(‘소금물을 마시며’)기도 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는 그의 시적 명령이 폭약처럼 터져 나온 것은 그 ‘바닥’의 어디쯤에서였다.
그런 정호승이, 바닥에 통달한 사람들의 말을 빌려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담담히 역설(力說)한다. 없는 바닥을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 바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가장 좋은 방법. 모순을 단숨에 건너뛰는 역설(逆說)이다. 수사법이 단순히 문학적 기교가 아닌 ‘삶의 원리’임을 알게 하는 순간이다. 저마다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언은 없을 듯하다.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