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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나이트 파티는 끝났다… 엄마 옷장을 뒤져봐?

입력 | 2008-09-05 03:00:00


《여러분, 옷장 문을 활짝 열어보세요. 혹시 할머니나 어머니가 물려주신 스카프나 재킷이 있진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올가을엔 그런 옛날 옷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자주 꺼내 입길 바랍니다. 다가오는 계절엔 ‘유행은 돌고 돈다’는 명제가 딱 들어맞을 뿐 아니라, 세월은 변해도 영원한 클래식의 진가(眞價)가 빛날 테니까요. 한동안 화려한 로맨티시즘에 푹 빠져 있던 패션계는 이제 복고(復古) 무드로 들어섰습니다. 절제된 미니멀리즘과 풍부한 장식의 보헤미안 스타일이 거대한 두 개의 흐름이죠. 재킷과 타이트 스커트 차림의 우아한 숙녀를 떠올리면 됩니다. 하지만 결코 심심하거나 지루하진 않습니다. 레이스, 체크무늬, 스카프, 퍼(fur) 등을 곁들이거나 건축물 같은 구조적 실루엣을 갖췄거든요. 커다란 꽃무늬와 깃털 장식 등 보헤미안과 에스닉(민속풍) 감성 터치도 많아졌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스타일이 큰 맘 먹고 새 옷을 장만하려는 여러분께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갖고 있는 옷들을 요즘 유행에 맞게 코디해보세요. 패션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신나는 모험이거든요!》

○미니멀리즘과 보헤미안 스타일로의 회귀

디자이너와 스타들이 옛날 옷을 파는 빈티지 상점을 자주 드나들며 영감을 얻기 때문인지 복고 패션이 넘쳐난다. 따라서 올가을 패션 트렌드를 감각적으로 소화하려면 서양 복식사(服飾史)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올해 패션은 1960년대(레이스), 1970년대(꽃무늬와 맥시 스커트), 1980년대(체크무늬와 어깨를 강조한 정장)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이번 시즌 ‘프라다’가 전면에 내세운 레이스는 실은 1960년대 크게 유행했던 스타일 요소다. 목 둘레나 소매 끝자락에 레이스 장식을 많이 쓰던 과거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 섬세한 검은색 레이스 톱을 하늘색 면 셔츠 위에 매치해 여성스럽기만 하던 레이스를 매우 모던한 느낌으로 바꿔버린 것.

‘백 투 네이처(back to nature)’가 모토였던 1970년대는 꽃무늬 등 자연을 패션에 담았다. 이번에 솔방울 모양으로 니트 스커트를 만든 ‘펜디’는 이 시대 영향을 받았다.

배우 멜라니 그리피스가 나온 영화 ‘워킹걸’(1988년)을 기억하는가. ‘인투 더 퓨처(into the future)’ 시대를 맞은 1980년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어깨를 각지게 재단한 일명 ‘파워 슈트’가 대세였다. ‘콤 데 가르송’과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실험적 브랜드들이 선보인 아방가르드한 실루엣과 타탄체크(서너 가지 색이 바둑판처럼 엇갈린 무늬)도 이 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올가을 필수 아이템…체크무늬와 스카프

복고 패션을 현대적으로 망라한 브랜드는 ‘돌체 앤 가바나’와 이 브랜드의 세컨드 브랜드인 ‘D&G’다.

이들 브랜드의 컬렉션 무대에는 옛날 여학생들이 즐겨 입던 스코틀랜드식 타탄체크가 한껏 쏟아졌다. 점잖은 무릎길이 모직 스커트와 갈색 가죽 롱부츠, 베레모를 걸친 모델들은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두르거나 머리에도 감쌌다. 메탈 느낌과 표범무늬로 대표되는 기존의 관능적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패션 전문기자 수지 멘키스 씨는 이렇게 말한다.

“섹시한 나이트클럽용 옷은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파티는 끝났다. 세계적 불황은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스타일의 고수(高手)라면 상하의 모두 체크로 입어도 좋다. 하지만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색상을 통일하는 것이 정석이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면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레이스, 체크무늬, 스카프, 퍼

보헤미안과 미니멀리즘▼

무난하게 체크를 즐기려면 큼지막한 체크무늬 셔츠와 재킷을 검은색 하의에 매치한 ‘랄프 로렌’의 스타일링을 참조하면 된다. 랄프 로렌의 체크무늬 롱코트는 발목에 닿을 정도로 길기 때문에 혹시 20년 전쯤 유행하던 ‘심하게 긴’ 코트를 아직 옷장에 보관하고 있다면 다시 꺼내 입기를 권한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는 “체크 셔츠에 모피 베스트(조끼)와 레깅스를 매치하면 감각적이고,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에 회색 재킷을 입으면 세련된 출근복이 된다”고 조언했다.

한편 올가을 빛날 만능 패션 아이템은 스카프다. 스카프의 ‘지존(至尊)’은 ‘에르메스’. 한 폭의 예술작품을 연상시키는 에르메스의 스카프는 허리에 벨트처럼 두르거나, 톱 블라우스 형태로 접어 재킷 안에 입으면 우아한 느낌을 준다.

○ 모던해진 레이스와 에스닉 장식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에 주로 사용되던 레이스가 기성복에 부쩍 많이 선보였다. ‘샤넬’은 구두에도 레이스 장식을 달았다. 단 소녀처럼 순결한 흰색 레이스가 아니라 고혹적이고 섹시한 검은색 레이스다.

패션계 종사자들에게 레이스를 모던하게 연출하는 법을 물었다.

롯데백화점 명품편집매장 ‘엘리든’의 남수영 바이어는 “가죽 스키니 바지 또는 모직코트 등 이질적 소재와 매치하면 여성스러운 레이스가 트렌디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했다.

프라다 홍보팀 김주연 씨는 “속이 내비치는 검은색 레이스 스커트 안에 살색 란제리를 입어 레이스 느낌을 극대화할 것”을 추천했다. 더욱 젊은 감각으로 멋을 내고 싶다면 티셔츠와 밝은 색 레깅스를 겹쳐 입으면 된다.

에스닉 무드도 한창이다.

검은색 정장에 에스닉 무늬 스카프를 길게 늘인 ‘에르메스’, 깃털과 구슬 장식을 활용한 ‘구치’ 등이 이 분위기에 심취했다. 동양적 분위기의 커다란 꽃잎 장식은 풍성한 스커트에 잘 어울리지만 남성적 실루엣의 모직 코트와도 좋은 궁합을 이룬다.

스타일리스트 황의건 씨는 올가을 쇼핑에 나선다면 에스닉 무늬의 스카프, 베스트, 스웨이드 소재 부츠 등 세 가지 아이템을 갖추라고 조언했다. 이들을 매치하면 ‘모던 에스닉’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설명이다.

○ 신비로운 보라색이 ‘뜬다’

올가을 보라색이 가장 트렌디한 색상으로 떠올랐다.

보라색은 검정, 아이보리, 빨강 등과 두루 어울려 매력을 발산하는데 특히 연회색과 보라색의 매치는 옷 잘 입는 사람들이 즐기는 세련된 배색이다.

정장 한 벌을 보라색으로 입으면 강렬하지만 가방, 신발, 벨트 중 한 가지를 택해 포인트 색상으로 활용하면 보라색을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다.

보라색은 그 신비로운 속성 때문에 멋쟁이 퍼스트레이디들이 사랑하는 색상이기도 하다.

1960년대 미국 재클린 케네디가 단정한 보라색 스커트 정장을 즐겨 입은 데 이어 최근에는 프랑스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보라색 정장과 코트, 드레스를 두루 입고 있다. 디오르는 이번에 호보 백(아래로 축 처진 반달모양 가방) 형태의 ‘디오르 61 핸드백’을 선보이면서 보라색을 메인 색상으로 삼기도 했다.

보라색은 보헤미안 스타일과도 썩 잘 어울린다.

‘이자벨 마랑’과 ‘산드로’ 등 자연스러운 감성을 내세우는 프랑스 브랜드들도 보라색을 많이 썼다. 톤 다운된 보라색은 카키색과 훌륭하게 어울리면서 ‘프렌치 시크’의 매력을 발산한다.

○ 영원한 클래식 소재: 트위드, 니트, 퍼

트렌드가 넘쳐날수록 많은 여성의 ‘로망’이 되는 샤넬. 트위드(방모직·紡毛織) 슈트와 2.55백, 동백꽃 장식 등 불변하는 클래식 디자인을 늘 유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샤넬은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거대한 회전목마를 무대에 올렸는데, 아마도 ‘패션은 돌고 돈다’는 의미를 암시한 듯.

올가을 샤넬은 1960년대 영향을 받았다. 당시 스타일의 하나인 그래픽 무늬를 본떠 앞면은 흰색, 뒷면은 검은색으로 타이츠를 만들었다. 트위드 슈트는 특별한 액세서리 없이 허리에만 벨트를 매 간결하게 표현했으며, 넉넉한 니트는 데님 미니스커트와 매치했다.

언제 어디서나 그 자체로 고급스러운 니트는 영원한 클래식이다. 빨간 터틀넥 티셔츠에 민트색 캐시미어 니트를 매치한 ‘미소니’의 코디법이 눈길을 끈다. 샤넬 등 많은 브랜드가 선보인 무릎길이 롱 니트 카디건은 티셔츠와 청바지에 무심한 듯 매치하면 멋스럽다.

이번 시즌엔 많은 동물이 수난을 당한 듯 보인다. 동물 애호가들의 찌푸린 얼굴이 눈에 선할 정도로. ‘펜디’는 24K 금을 입힌 밍크코트를 선보이며 ‘럭셔리의 극치’를 뽐냈다. 스키복과 고글, 유모차에까지 밍크 장식을 했다.

그뿐인가. 에르메스, 발리, 루이뷔통 등 수많은 브랜드가 이번 시즌 약속이나 한 듯 모피 베스트를 내놓았다. 구식 모피 코트의 팔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 베스트로 리폼하면 당신도 최첨단 유행의 선봉에 설 수 있다.

다양한 트렌드가 공존하는 요즘, 잘 연마된 패션 센스와 도전정신을 갖추면 누구나 멋쟁이가 될 수 있다. 지갑 사정을 원망하지는 말 것. 올가을 유행할 패션 아이템 한두 개는 이미 당신 옷장 속에 걸려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