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필승”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아내 신디 씨가 4일 세인트폴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인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그의 남편 토드 씨와 함께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매케인 후보는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이날 당의 후보 지명을 수락하고 대선에서의 필승을 다짐했다. 세인트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선거는 4일 끝난 공화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판도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이번 대선은 마치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1인 외줄타기’ 같은 형국이었다. 최초 흑인 후보라는 높은 흥행성,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극적인 맞대결과 갈등으로 인해 미국 언론의 관심은 오바마 후보에게 집중돼 있었다.
백전노장 존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 후보의 퍼포먼스에 따라 지지도가 오르내리는 ‘종속변수’처럼 여겨져 온 감이 있었다.
그러나 매케인 후보의 연설이 끝난 4일 밤 공화당은 완전히 활력을 되찾은 모습이다.
친(親)오바마 성향이 짙었던 언론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휘청거리는 듯하던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3일 밤 ‘역전 어퍼컷’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도전적 연설을 통해 지지자를 환호시킨 데 이어 매케인 후보는 민주당이 독점했던 ‘변화’ 어젠다를 과감히 낚아챘다.
‘워싱턴의 변화’ ‘당파적 정치의 종식’을 강조함으로써 조지 W 부시 3기론의 굴레를 벗으면서 승부의 열쇠를 쥔 중도파, 무당파 유권자에게 적극적 구애를 시작한 것.
사실 공화당 내 ‘매버릭(maverick·무소속)’으로 불렸던 매케인 후보는 핵심 보수층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내키지 않는 ‘우향우’ 행보를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낙태 반대, 총기 보유 찬성 등 확실한 보수 성향을 지닌 페일린 후보가 핵심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해줌에 따라 매케인 후보는 자유롭게 중도를 향한 구애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페일린 후보의 3일 연설은 미국에서 무려 3720만 명(6대 방송 기준)이 지켜본 것으로 조사됐다. ‘역사적 연설’로 꼽혀 온 오바마 의원의 지난달 28일 후보수락 연설을 3840만 명이 지켜봤고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수락 연설 시청자는 2400만 명에 불과했던 걸 감안하면 페일린 후보에게 갑작스레 쏠린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오바마’란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조목조목 자신을 공격한 페일린 후보의 연설 내용에, 웬만해선 네거티브 공세에 즉각적 반응을 보이지 않아 온 오바마 후보도 발끈했다. 그는 4일 “(페일린은) 국민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를 공격하고 매케인을 찬양하는 데 급급했다”고 불쾌해했다.
물론 여전히 판세는 오바마 후보가 유리하다. 하지만 사기가 오른 매케인 진영의 추격 기세도 만만치 않다. 미 CBS방송이 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매케인 후보와 오바마 후보가 42%로 같은 지지율을 보였다.
‘흑인 대 백인’(대통령), ‘남성 대 여성’(부통령), ‘경륜 대 참신’의 선명한 대결 구도로 짜인 본선의 최대 이슈는 단연 경제 회생이다. 특히 부동층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유권자를 겨냥한 서민경제 회생 방안을 누가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다. 오바마 후보는 이미 중산층 감세를 공약했고 매케인 후보는 세율을 낮게 유지하면서 투자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오바마 후보를 겨냥한 ‘리버럴’ ‘경험 미숙’ 공격, 매케인 진영을 겨냥한 ‘초록동색’(부시와 매케인은 한 가지)론 등 네거티브 공방도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방전은 26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총 네 차례(부통령 토론 1회 포함) 열릴 TV 토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2000년 대선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을 비롯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바이든 후보와의 TV 토론 준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