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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독서로 논술잡기]조선의 프로페셔널

입력 | 2008-09-08 02:54:00


◇‘조선의 프로페셔널’/안대회지음(휴머니스트)

이 책의 작가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옛 문헌들을 뒤져 200년 전에 활동했던 전문가 열 사람을 찾아냈다. 만능 조각가, 프로 바둑기사, 책장사, 원예가 등 전문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인생이 책 속에서 뜨겁게 살아난다. 그들의 삶은 자신감과 자존심, 자부심으로 압축된다. 다음의 글을 논술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가) 그러나 정운창은 김종귀와 대국의 청은 묵살 당했다. 그는 탄식을 토해냈다. “재능을 지닌 선비가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이 그래 이런 정도란 말인가? 내 차마 걸음을 되돌릴 수 없구나! 내가 떠나온 고향 땅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얼추 수천 리다. 고갯길의 험준함과 나그네의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어렵사리 여기까지 이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바둑이라는 기예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자웅을 겨뤄서 잠깐 사이의 기분을 맛보자는 것뿐이다.” (70쪽)

(나) 정철조의 호는 석치(石痴)다. 석치란 ‘돌에 미친 바보’란 뜻이다. 여기서 돌은 벼룻돌이다. 그러니 벼루를 깎는 데 미친 바보다. 정철조는 벼루 깎는 것을 취미와 예술로 삼은 최초의 한국 사람이 아닌가 한다. 생전에는 말할 나위가 없고,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벼루를 잘 깎는 명사로서 그의 호는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의 예술적 감각이 당시에 유명했다는 징조다. ‘송남잡지’에는 “우리 동방에는 정철조라는 사람이 있는데 벼루에 못 말리는 고질병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벼룻돌에 미친 바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146쪽)

미쳐서(狂) 경지에 미친(及) 장인들

그들이 찾아 헤매는 건 과연 뭘까

(가)는 김종귀라는 조선 제일의 고수와 한판 붙으려는 정운창의 바둑 예술을 보여준다. (나)는 오로지 벼루 깎는 것에 미친 정철조의 인상적인 조각가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제 (가)와 (나)를 바탕으로 스스로 논술 문제를 만들고 답안까지 작성해보자.

① ‘(가)의 정운창이 보인 행동과 인식을 평가하고, 이 글을 바탕으로 한 분야의 최고수의 본질을 설명하시오’를 만들어보자.

(가)에서 정운창은 재능을 지닌 선비가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말한다. 그의 독백에는 비장미가 감돈다. 그는 처절하게 김종귀와의 바둑 대국을 원한다. 그의 목적은 조선의 최고 국수로서 명예와 부를 획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지닌 사람끼리 ‘바둑을 두며 얻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고수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즐거움’이란 최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문가다운 모습이다.

② ‘(나)의 정철조의 예술의 특성을 밝히고, 이와 관련된 오늘날의 사례를 들어 그의 삶의 가치를 제시하시오’를 생각해보자.

(나)의 정철조는 벼루 조각에 미친 상태다. 바로 정철조에게 ‘한 분야에 미쳐야(狂) 어느 경지에 미친다(及)’는 논리가 적용된다.

선비였던 정철조는 벼루를 깎는 ‘예술가’로서 돌만 보면 칼을 들이대는 몰입의 경지를 보인다. 그는 명품 벼룻돌을 이용해 고급품만 만든 것이 아니라 벼룻돌의 재질, 품격을 따지지 않고 최고품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장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장인은 죽음을 초월하여 예술의 혼을 발휘한 진정한 전문가다.

용기와 집념을 지닌 조선시대의 전문가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한 가지 일에 몰두함으로써 최고의 능력과 기술을 발휘한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