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이끌 과학기술인을 길러내는 데 써 주십시오.’ KAIST에 578억 원을 기부한 류근철 한의학 박사(왼쪽)의 등기서류 전달식이 7일 낮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렸다. 전달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지명훈 기자
KAIST에 578억 기부 류근철 박사 등기서류 전달식서 눈시울
“추운겨울 셋방서 쫓겨났던 38년전 기억 생생
마음 아파하는 제 아내에게 큰 위로와 축복을”
KAIST에 578억 원을 기부한 류근철(82·모스크바국립공대 종신교수) 한의학 박사의 등기서류 전달식이 열린 7일 낮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1층 중식당.
류 박사는 기도로 인사말을 대신하다가 “셋째 딸은 아직도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적셨다.
“38년 전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축복으로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와 2남 3녀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축복을 받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셋째 딸에게 집 한 채 사주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는 아내에게 큰 위로와 축복을 해 달라”고 제안했다.
류 박사는 기도를 끝낸 뒤 분위기가 너무 숙연해졌음을 감지했는지 농담을 던져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 냈다.
“KAIST(당시 KAIS)를 설립한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 전 하늘나라에서 전화를 걸어와 ‘KAIST를 세우기 잘했다. 거리가 조금 멀어 갈 수는 없지만 축배를 같이 들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이 자리에 참석한 서남표 총장은 “한국의 기부문화, 나아가 한국의 역사를 바꾼 류 박사의 기부에 대해 미국의 지인들에게도 자랑했다”며 “류 박사가 KAIST의 리더로서 같이 일해 줄 것을 약속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KAIST를 세계적인 이공계 명문으로 만드는 꿈을 설계해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식사 후 38년 전의 고통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류 박사는 “당시만 해도 환자를 보는 대신 의료기기 개발 연구에 매달려 돈이 없었다”며 “추운 겨울에 셋방에서 쫓겨나 이삿짐을 가지고 이리저리 방을 구하러 다니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5남매 가운데 3남매는 집을 사주거나 사는 데 많은 지원을 해줬고 큰딸은 현재 집은 없지만 캐나다로 이민 갈 때 많은 도움을 줬다”며 “아내가 셋째 딸이 집이 없는데 아파트까지 모두 기부한 것을 무척 가슴 아파한다”고 전했다.
류 박사는 “우리나라는 유류법(遺留法)이라는 잘못된 규정이 있어 기부자가 1년 안에 죽어 가족이 소송을 하면 50%는 되찾을 수 있다”며 “나는 1년 안에 죽지는 않겠지만 기부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이라는 진단서를 첨부해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정부의 고위직을 지낸 명사가 모교 행사에 참석해 단돈 1만 원도 기부하지 않으면서 기부를 독려하는 말만 하는 것을 듣고 실망한 적이 있다”며 “앞으로 KAIST 기부 1000억 원을 이끌어 낼 계획인데 솔선수범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류 박사는 이번 기부를 계기로 KAIST의 발전재단 명예이사장과 초빙 특훈교수(연구업적이나 학교 기여도가 뛰어난 교수에게 주는 직함) 직을 맡았다.
류 박사의 기부 이후 KAIST에는 크고 작은 기부가 30여 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대전에 사는 사업가 김모 씨가 도심 주변의 임야 21만 m²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서 총장의 부인 서영자 씨가 류 박사를 찾아와 “사모님과 통화를 했더니 ‘그 자리에 가지 못해 미안하지만 남편의 뜻에 충분히 동의하며 기부문화의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