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김진송 지음/현실문화연구
《“1930년대에는 일상 깊숙이 침투한 낯설고, 불협화음을 내며, 퇴폐적이고 비도덕적인 ‘현대’라는 현상들을 새로운 일상으로 재조직하려는 수많은 시도들 또한 한편에서 존재했다. (…) 현대화(근대화)란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균등한 자유를 보장하는 개방과 자유를 요구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의식과 행동들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그리고 문화적인 고양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인’ 그 원형을 찾아서
저자가 첫머리에 밝히듯 이 책은 출발이 독특하다. 저자는 원래 한국의 근현대 문화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나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근현대 미술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당시의 ‘근대성(그리고 현대성)’이 현재의 미술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규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은 그 근대성을 찾아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가 보기에 1930년대는 ‘현대가 형성된 곳’이다. 지금 보면 어색하고 촌스러움이 밴 낯선 과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시기는 현대인의 원형이 싹트고 있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두 가지 개념 축을 염두에 둘 것을 권한다. 첫 번째는 ‘나(주체)’와 ‘나에게 다가오는 다른 것(타자)’이며 두 번째는 ‘새로운 좋은 것(서구 또는 현대)’과 ‘낡은 나쁜 것(전통 혹은 봉건)’이다. 이 두 개의 개념축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1930년대 다양한 패러다임을 이뤄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현실에서 살아가던 지식인은 ‘개념 축의 교차’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날선 사각모에 망토를 두른 외양의 지식인은 타자에겐 경외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도 선민의식을 가진 ‘새로운 좋은 것’의 향유자들이었다. 하지만 식민지 관료나 교사 등 직업을 갖지 않고 주체적으로 실업자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낡고 나쁜 것’의 몰락한 양반 모습 그대로였다.
“1930년대가 되어 신식교육이 확산되면서 지식인의 수는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고등실업자 수가 늘어나면서 ‘룸펜’이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졌고 스스로를 멋스럽게 룸펜이라고 부르는 치도 늘었다.
룸펜이란 말은 독일어에서 누더기, 넝마란 뜻으로 제정러시아 시대의 서구파 자유주의자들을 이르는 말로 지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층 지식계급을 의미하며 이들의 본질적인 속성은 반항과 불안, 무기력 등이다.”
이 책은 연구서로 출발했지만 근대라는 관념의 틀에 빠지지 않았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례를 살펴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덕분에 책은 진지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답답하지 않다.
이 책을 통해 1930년대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통한 근대성을 살피는 것은 현대에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틀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당시 지니고 있던 사고의 줄기나 생각의 결들이 밑동을 파보면 현재와 동일한 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던 보이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셈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