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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이끈 이에리사 前태릉선수촌장

입력 | 2008-09-08 02:59:00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2005년 3월부터 3년 5개월간 태릉선수촌장을 맡았던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 그가 치열했던 태릉선수촌 생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선수촌 주방 숟가락 개수까지 훤하죠”

“새벽의 승전보는 온 나라를 열광케 했다. 세 여자 선수의 끈질긴 투지가 세계를 정복하자 ‘한국의 딸은 역시 강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중공(옛 중국)과 쌍벽을 이루고 세계 탁구 정상에 군림하던 숙적 일본을 깨끗이 눌러 이긴 것이기에 선수들의 승리는 더욱 값지다.”

1973년 4월 10일 동아일보 1면 톱기사 중 일부다. 이날 유고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을 3-1로 꺾고 우승했다. 한국 구기 사상 첫 단체전 세계 제패였다. 그 중심에 최연소 19세 소녀 이에리사(54) 용인대 사회체육학과 교수가 있었다.

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한 커피숍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짧은 머리에 정장 차림이었다.

이 교수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을 이끈 태릉선수촌장이었다. 2005년 3월 첫 여성 선수촌장이 됐고 베이징 올림픽 종합 7위를 이끌었다. 하지만 올림픽 직후 임기를 7개월 남겨두고 물러났다.

이 교수의 ‘치열했던’ 태릉선수촌 생활과 자식 같았던 선수들, 그리고 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나의 사랑, 나의 아이들

이 교수는 선수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미혼인 그에게 선수들은 자식 같은 존재다.

그의 사랑이 통해서였을까. 아이들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금 13개, 은 10개, 동메달 8개로 204개 참가국 중 종합 7위에 올랐다. 금메달 13개는 한국 올림픽 출전 사상 최다이다.

이 교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관리에도 철저했다. 유해 요소를 확실하게 막았다. 태릉선수촌 내 케이블 TV를 끊었고 인터넷은 오후 10시 이후에는 제한했다.

“일부에서는 ‘너무 통제가 심하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제가 고집을 부렸죠. 아이들이 편안히 쉬어야 할 시간에 성인 방송 등을 접하면 잡생각이 생기고 경기력이 떨어지거든요.”

그는 베이징 올림픽 역도 여자 75kg 이상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장미란(25)을 ‘든든한 아이’라고 칭찬했다. 주위 사람을 잘 챙기면서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는 것.

“미란이는 몸무게를 억지로라도 늘려야 하는 아이예요. 그래야 더 무거운 바벨을 들 수 있기 때문이죠. 여자로서 예쁘게 보이고 싶을 나이지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죠.”

장미란을 잘 따랐던 선수는 박태환(19)이었다. 선수촌에서 힘이 들 때면 장미란의 어깨에 기대 장난을 칠 정도로 의남매처럼 지냈다.

박태환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장미란처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태환이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인성 교육 등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 1969년 그리고 2005년 태릉선수촌

이 교수가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1969년. 문영여중 3학년 때였다. 그에게 태릉선수촌은 치열한 전쟁터였다. 무게 2.7g, 지름 40mm의 탁구공을 하루 수천 개씩 쳤다.

그리고 36년이 흐른 2005년 첫 여성 태릉선수촌장이 된 그는 깜짝 놀랐다. 선수촌은 건물 몇 개가 더 세워진 것 외에 3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체육관 천장은 빗물이 새고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에요. 숙소 벽지는 곰팡이가 생겨 있더군요. 이런 환경에서 국가대표가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죠.”

이 교수는 선수촌 곳곳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낡은 시설을 고치고 강원 태백선수분촌에 체육관도 만들었다. 국가대표들만의 공간답게 선수촌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식경제부(전 산업자원부)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예산을 더 받기 위해서였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 촌장은 한 번 물면 절대 안 놓는다”는 말이 돌았다.

그 덕분에 선수촌 훈련 기간은 연간 105일에서 180일로 늘었다. 선수와 지도자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팀워크가 좋아졌다. 늘어난 훈련 기간만큼 지도자들의 열악한 보수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선수촌장이 된 후 1년 동안 오후 9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어요. 선수촌 예산부터 주방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했죠. 선수촌장은 아이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죠.”

● 또 다른 내일을 꿈꾸다

이 교수는 200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여성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여성과 스포츠 트로피’를 받았다. 1월에는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168명에게 IOC 위원으로 추대됐다.

이 교수의 IOC 위원 도전은 언제쯤 구체화될까.

“후배들이 조만간 다시 IOC 위원 추대를 공식화하겠다고 하더군요.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서 저를 IOC에 추천해야 가능하죠. 선수와 지도자, 행정가를 경험한 만큼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더 큰 무대에서 일할 날이 오겠죠.”

이 교수는 강의를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한 3년 5개월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

“결국 사람이 재산이더군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나에게 되돌아오더라고요. 상처를 준 사람도 용서하자고 마음먹었죠.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

:이에리사 前촌장:

△1954년생 △서울여상, 명지대 졸업, 동 대학원 이학박사 △1972년 스웨덴 스칸디나비아오픈 단식 복식 우승, 1973년 유고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 우승, 1969∼1975년 전국종합선수권 7연패, 1976년 서독 오픈 단식 복식 우승 △1980∼1982년 서독 FTG 프랑크푸르트 플레잉코치, 1982∼1985년 동아건설 코치, 1988년 서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탁구 감독 △2005∼2008년 첫 여성 태릉선수촌장, 현 용인대 사회체육학과 교수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