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두 차례에 걸쳐 이승만에 관한 역사 특집을 방영했다.(대한민국하면 김구의 이름과 얼굴만 떠올리던 상황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맞아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당연히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고 영향력도 만만치 않을 듯싶다.)
이 특집을 통해 그려진 이승만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는 탁월한 능력과 학식을 갖춘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든 능력을 자신의 권력 추구에만 활용했다. 일본에 대한 거족적인 울분에도 공감하지 않고 권력을 위해서는 동지를 배반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광복 후 맥아더의 등에 업혀 권력을 장악하면서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킨 미국의 앞잡이였다. 과연 사실인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의 화신이요, 분단의 원흉으로 몰아붙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자 하는 친북좌파의 역사 왜곡 공작이 우리 교육에 스며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방심하는 사이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에서조차도 심히 왜곡됐다는 판정이 나 폐기된 책이 우리 운동권의 교재로 유입됐다. 그 내용이 전교조를 통해 학교 교육 속으로 스며들어 확대 재생산됐기 때문에 한때는 대한민국에 극도의 부정적 시각을 갖지 않은 젊은 학자는 학계에 발을 못 붙이고 출판사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었다.
의도적으로 부정적 면만 부각
KBS의 이승만 특집 방영이 변화하는 학문적 기류에 저항하며 반(反)이승만적 역사해석에 아예 대못질을 해 두겠다는 정면 돌파의 시도인지 아니면 무지나 편향된 역사의식의 단순한 반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왜곡의 수법이 매우 정교하므로 해독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마치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듯한 해설자의 차가운 어조에서부터 이번 프로그램은 증언에 기초한 ‘사실’만을 담는다는 인상을 준다. 단편적 사실만으로 볼 때는 잘못이 없는 듯 보인다. 정작 심각한 왜곡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생애와 활동에서 어떤 사실을 부각하고 어떤 것을 무시하느냐 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승만이 테러식 투쟁방법에 공감하지 않은 사례를 들면서 민족적 반일 감정이나 울분에 공감하지도 않은 냉혈의 정략가인 듯 묘사했다. 국제사회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뛰었다든가 ‘일본의 내막’이라는 책을 발간해 미국 국민의 반일감정을 조성함으로써 우리의 독립 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했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독립운동에서 소외된 독불장군이었다면 왜 광복 후 건국운동 세력들이 앞 다퉈 그를 영입하려 했고 심지어는 공산당의 박헌영까지 이승만을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 추대했는가. 물론 그런 사실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긍정적인 측면은 묵살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KBS의 특집은 개별적 사실에 충실한 척하면서 거대한 역사왜곡을 감행하는 전형적 수법을 보여준다.
학계 권위자의 이름과 얼굴을 포장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치졸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이승만 연구의 세계적 권위인 이정식 유영익 교수의 증언까지 채취했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화신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자료로 말을 교묘하게 거두절미해 이용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상주의자 이승만은 일생을 독립투쟁에 바치고 대한민국을 세워 남한의 공산화를 방지한 탁월한 정치 지도자였지만 분단을 막지 못했고 결국은 독재자로 낙인찍혀 역사의 무대를 떠나야 했던 비극적 인물이었을 뿐 권력의 화신이 아니었다. 20대 후반에 그가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이나 1941년에 발간한 영문으로 된 책 ‘일본의 내막’, 6·25전쟁의 와중에 쓴 한문시를 읽지 않고 감히 그의 인물됨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자체 검증체계 강화해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해서는 해석상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언제나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또는 무의식적으로 편향된 견해가 엄격한 학술적 검증의 여과 없이 공영방송이라는 막강한 매체를 타고 온 나라에 방영되는 일을 방치할 수는 없다. 방송국 자체가 검증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해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