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시장에서 아시아 미술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3, 4년 전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중국의 현대 화가들은 어느새 ‘귀하신 몸’이 됐다. 지난해 세계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 100명의 생존 화가 가운데 36명이 중국 화가였다. 중국 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거래액은 작년 3조2000억 원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로 부상했다.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최근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1516만 달러(약 166억 원)에 팔리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한국의 미술시장은 지난해 이례적인 호황을 누렸음에도 경매시장의 거래총액이 2200억 원에 그쳤다. 중국 일본과 ‘3파전’을 벌이기에는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올해 들어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급속히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미술품 양도세 도입이라는 악재가 등장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4000만 원 이상의 개인 소장 미술품에 대해 양도차액의 20%를 세금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술계는 “양도세 부과로 거래가 위축되면 화가들의 창작 여건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발한다.
▷미국은 개인이 미술품을 1년 이상 보유한 뒤 판매해 차익을 얻었을 경우 다른 자본이득과 합산해 8∼28%를 과세하고 있다. 영국은 같은 방식으로 10∼40%를 부과하고 있다.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 세금이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은 미술계의 여건이 척박하다. 한국의 미술품 경매시장은 초기단계여서 아직 상당수 거래가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일이 거래 사실을 찾아내 세금을 물리기도 힘들 것이다. 사치품목인 미술품 구입이 보편화되어 있는 선진국과는 여러모로 같은 수준에 놓고 보기 어렵다.
▷현 단계에서의 미술품 과세가 문화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예술가 지망생들은 대학 4학년이 되면 진로 변경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이다. 졸업 후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문화계 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에서 동양적인 감성이 막 꽃피려는 시점에서 정부도 여건 조성에 힘을 보탤 필요가 있다. 미술품 과세는 미술시장의 규모가 늘어난 뒤 도입해도 늦지 않다. 자칫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까 두렵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