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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프랜차이즈 들어선 삼청동, 배신인가 진화인가

입력 | 2008-09-09 02:56:00


토박이들 “특유의 고즈넉함 해친다” 우려

새 매장들 한글간판-화단 등 ‘적응’ 노력

《고즈넉하고 한가롭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은 시민들에게 도심 속의 피난처였다. 대로변의 차들과 빌딩 숲에 지친 이들은 삼청동의 좁디좁은 골목길과 작지만 개성 있는 상점들에서 휴식을 찾았다. 광화문에서 불과 10분 거리지만 프랜차이즈도, 편의점도, 네온사인도 없는 ‘3무(無) 동네’ 삼청동의 분위기는 도심과 달랐고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 도넛-커피 전문점 들어서

그랬던 삼청동에 프랜차이즈가 속속 들어서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도넛 프랜차이즈 전문점 ‘던킨 도너츠’가 작년에 삼청동 큰길 한가운데 문을 열더니 외국계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빈’이 올 2월 말 정독도서관 옆쪽에 들어섰다. 이어 국내 햄버거 전문점인 ‘크라제 버거’도 3월부터 삼청동 길 끝자락에 26호점을 내고 손님들을 끌고 있다.

이들 매장은 삼청동의 특성을 감안해 나름대로 다른 매장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커피빈은 미국 본사를 설득해 처음으로 ‘더 커피빈 앤 티리프’라고 한글 간판을 달았을 뿐 아니라 외부에 한옥 스타일의 격자무늬를 도입했다. 던킨 도너츠도 다른 지역 매장과는 달리 외부에 미니 화단을 만들고 내부는 화려한 그림들로 꾸몄다. 크라제 버거도 오랜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내·외부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청동을 꾸준히 찾아온 시민들 대부분은 삼청동에 들어선 프랜차이즈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2002년 무렵부터 혼자 걷거나 생각하고 싶을 때 삼청동을 찾았다는 정은지(25·여) 씨는 “골목골목에서 조그맣지만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만나는 게 삼청동을 찾는 이유였는데 여기에서까지 프랜차이즈를 보게 되니 어색하다”고 말했다.

○ 한적한 분위기 사라지나

왜 삼청동까지 이런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게 된 것일까. 지역 상인들과 부동산 관계자들은 ‘강북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삼청동의 특수성과 삼청동을 찾는 연령대가 젊어졌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삼청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프랜차이즈나 외식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사랑받는 삼청동을 꼭 거쳐 가야 할 곳으로 인식한다”며 “게다가 삼청동을 찾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젊은층이 가볍게 들렀다 갈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한 편인 프랜차이즈가 자연스레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들어선 프랜차이즈 외에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모 샌드위치 전문점도 강남과 여의도에 이어 삼청동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연이은 프랜차이즈의 등장에 삼청동에서 오랫동안 터를 가꿔온 이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삼청동 부엉이박물관 배명희(54) 관장은 “조용하고 한적하던 삼청동 고유의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벌써 갤러리 등 몇몇 이웃은 이곳을 떠났다”며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옮겨 왔던 이들이 이렇게 다 흩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삼청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진선북카페’의 허선(39) 대표는 “안타깝지만 들어오는 가게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2005년부터 지역민과 상인들이 힘을 모아 삼청로 문화축제를 벌이고 있다. 삼청동만의 문화를 공유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