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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광주-부산 비엔날레 가보니…

입력 | 2008-09-09 02:56:00


《경쟁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비교해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진지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녹아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와 자유롭고 젊은 감각의 눈부신 향연을 펼치는 부산비엔날레. 5, 6일 각기 개막한 두 미술축제를 둘러보면서 현대미술의 대조적인 두 얼굴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추석 연휴, 남쪽으로 귀향하는 분들은 꼭 들러보시길!》

묵직한 주제 많이 보이지만

홍어-뻥튀기 등 일상소재도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주제 없음’으로 예고됐으나 막상 현장에선 흐름이 또렷하게 감지됐다. 그것은 지구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 36개국 127명의 작가가 내놓은 115개 작품. 그중엔 탈식민주의, 주변부, 소수자의 현실과 상처를 진지하게 탐색하면서 정치 사회적 현안을 끌어안은 개념적 작업이 많다. 탄자니아, 세네갈, 말리, 쿠바, 아이티 등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없던 제3세계 작가가 다수 포함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1전시실에서 미국 흑인 동네의 전형적 모습을 재현한 케리 제임스 마셜의 설치작품에 등장한 문구(‘Every minute is a black history minute’)와 2전시실의 글렌 리건의 네온작품(‘Negro sunshine’) 등은 인종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4전시실 입구에서는 제니퍼 알로라와 기예르모 칼사디야의 거대한 설치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대형 소라같이 생긴 조형물 안에 가수들이 들어가 사담 후세인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의 연설을 아리아처럼 부른다. 헬리콥터에 자신의 몸을 매달고 판자에 드로잉한 아델 압데세메드의 작업과 그 과정을 촬영한 영상물도 흥미롭다.

하얀 천이 물결치듯 움직이는 한스 하케의 설치작업과 데이비드 아디아예의 ‘아프리카 도시들’은 지난해의 주요 전시로 선보였다. 이 밖에 중동문제와 환경문제, 한국의 분단 노동문제 등을 다룬 영상작업이 다수 선보여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

이런 작품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겐 대인시장의 ‘복덕방 프로젝트’와 무등산 자락의 의재미술관 전시를 추천한다. 대인시장에서는 홍어 생식기를 본뜬 설치작업과 즉석 뻥튀기로 만든 작품 등 현대미술과 재래시장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의재미술관에는 100kg의 초콜릿으로 만든 집이 있다. 미각 모티브를 다룬 작업으로 관객들이 초콜릿을 떼어먹을 때마다 작품은 사라져간다.

전반적으로는 첫 외국인 총감독을 맡은 오쿠이 엔위저의 색깔을 드러낸 전시였으며 작품 수준도 고른 편. 다양한 작품을 공간에 상관없이 하나로 통합시킨 전시구성과 연출도 무난했다. 다만 메이저 아티스트의 참여나 이슈가 될 만한 작업이 드문 것은 아쉽다는 평이다.


‘백사장에 옮겨앉은 부산’ 등

현대미술과 친해지기 노력

현대미술전, 바다미술제, 부산조각프로젝트 등 3개 부문으로 구성된 2008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낭비’. 소비의 개념이 아니라 과도하게 쌓인 에너지를 예술로 분출하고 해소한다는 의미다. 현대미술을 대중이 친근하게 접하도록 ‘친절한 비엔날레’를 만드는 데도 관심을 기울인 점이 돋보였다.

현대미술전의 경우 설치작업 ‘깨어진 거울’과 조각 ‘피에타’ 등을 내놓은 이용백, 과잉소비와 과잉욕망, 뒤틀린 신앙을 형상화한 설치작업 ‘부활 예수상’의 전준호, 할리우드 영화사와 거대 기업 등을 풍자한 설치 영상작업의 김기라 등이 눈길을 끈다. 해외 작가의 경우 명상하듯 매일 나무조각과 그림을 그리는 까민 렛차이쁘라셋, 게이포르노에 정치적 관점을 덧붙여 19세 이상 관람가 사진을 선보인 브루스 라부르스, 독재자를 풍자한 영상의 모리무라 야스마사, 미술관에 자동차극장을 옮겨놓은 에리크 판 레이스하우트의 작업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술은 즐거운 놀이임을 상징하듯이 바다미술제는 미월드놀이공원을 중심으로 지하철역과 광안리 백사장에서 펼쳐진다.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만드는 작업이 즐비하다. 한때 예식장과 스포츠센터로 쓰인 곳을 전시공간으로 오롯이 활용해 미술작품과 일상의 공간은 의외의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수차례 성형수술을 통해 자기 얼굴을 예술작품으로 만든 행위예술가 생 오를랑, 소중한 물건을 나프탈렌으로 만들어 증발과정을 보여주는 미야나가 아이코, 하얀 베이비파우더로 대형 지도를 설치작업으로 만든 니빤 오라니웨스나, 주역을 통해 관객이 미래를 직접 점쳐볼 수 있는 설치작품을 선보인 이상우, 백사장 모래를 파고 부산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한 김미애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특히 11개 도시를 돌아가며 그 도시의 불만을 채집해 합창으로 부르는 ‘불만합창단’을 영상으로 담아낸 텔레르보와 올리버 코차 칼라이넨의 작업은 배꼽을 쥐게 만든다.

광주·부산=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