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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7년 강수연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입력 | 2008-09-09 02:57:00


조선시대 대갓집 종손 신상규와 그의 부인인 윤씨와의 사이에 손이 없자 상규의 어머니와 숙부 신치호는 필녀의 딸 옥녀를 ‘씨받이’로 간택하여 집 안으로 들인다.

합방하는 날, 옥녀를 대면한 상규는 옥녀의 빼어난 용모에 반하고 부인 윤씨는 옥녀를 투기한다. 옥녀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상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자 필녀는 옥녀를 타이르나 옥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옥녀가 아들을 낳자 그 아이는 곧 윤씨의 품에 안기고, 아기의 얼굴도 못 본 옥녀는 떠나야만 했다. 결국 옥녀는 자신의 한 많은 생을 죽음으로 마치고 시대에 항거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의 줄거리다. 옥녀로 열연한 강수연은 1987년 9월 9일 세계 4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모스크바)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강수연은 2년 뒤인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파계한 비구니의 정신적 고뇌와 방황을 그린 ‘아제 아제 바라아제’(임권택 감독)로 또다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로 떠오른다. 삭발로 화제를 모았던 강수연은 그해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스크린 속의 강수연은 착하지 않다. 한 평론가는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작은 입술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독거미 여인”이라고 평했다.

TV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정난정 역을 맡은 강수연은 오직 성공을 위해 독하게 남자들을 쥐고 흔든다. 그의 별명은 ‘독종’이다. 그의 ‘독기’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감이고 당당함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념이며 남성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성취 지향적이다.

강수연의 이런 이미지는 1980년대 여성 관객에게는 대리 만족을 줬고 남성 관객을 매혹시켰다.

1966년생인 강수연은 올해로 42세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스크린에서 보여줄 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가 출연했던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오병철 감독)가 생각난다. 최초의 불교 경전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있지 않을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영화배우 강수연을 기대해 본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