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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장전해 장애 너머로 쏘다

입력 | 2008-09-10 03:02:00

장애인올림픽 金金金… 베이징의 감동 다시 한번기다리던 금메달이 한꺼번에 3개나 쏟아졌다. 한국 선수들은 9일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사격에서 2개, 보치아에서 1개 등 세 번이나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사격 여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이윤리(왼쪽 사진 오른쪽)와 은메달을 딴 김임연이 함께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보치아에서 우승한 한국 대표팀 ‘팀 코리아’의 막내 박건우(오른쪽 사진)가 시상식을 마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금맥이 터졌다. 6일 개막 이후 들을 수 없었던 애국가가 9일 베이징 하늘에 3번이나 울려 퍼졌다. 제13회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의 ‘팀 코리아’는 사격 여자 50m 소총의 이윤리(34)를 시작으로 사격 혼성 10m 공기소총의 이지석(34), 보치아의 박건우(18·인천은광학교 3)가 잇달아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여자 사격 베테랑 김임연(41·KB국민은행)은 은메달을 보탰고 보치아의 정호원(23)과 육상 남자 400m 계주는 동메달을 땄다. 전날까지 종합 28위에 그쳤던 한국은 금 3, 은 3, 동메달 3개를 얻어 종합 11위로 뛰어올랐다.》

○ 남친과 함께

1996년 7월 4일.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전남 완도군청에 근무하던 스물두 살의 이윤리는 친구와 함께 승용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차는 고여 있는 빗물을 피하려다 비탈길에서 굴렀다. 꿈 많던 그는 척추를 다쳐 1년 반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다.

2008년 9월 9일. 휠체어에 앉은 이윤리는 무거운 소총을 든 채 만세를 불렀다. 사격 여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사고 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이윤리는 걱정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총을 잡은 건 2년이 조금 넘었다. 2006년 1월 대전보훈병원 사격장에서 재미삼아 쏴 본 게 인연이 됐다. 마침 같은 병원에는 부상 치료차 온 특전사 저격수 출신 동갑내기 이춘희 씨가 있었다. ‘전문가’ 이 씨는 사격의 재미에 빠져들던 이윤리를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이윤리의 사격 실력은 깜짝 놀랄 만큼 급성장했다. 지난해 독일오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했고 올 6월 제1회 서울컵에서는 한국 신기록과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해 사격계를 놀라게 했다.

베이징까지 날아가 개인 코치를 자처했던 이 씨는 이윤리가 귀국하는 대로 조만간 청혼을 할 계획이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아내와 함께

남편이 쏜 총알이 표적지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옆에 있던 아내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9일 혼성 10m 공기소총에서 705.3점을 쏴 프랑스의 라파엘 볼츠를 0.2점 차로 누르고 짜릿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지석은 평소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하반신을 쓰지 못한다. 양손에도 제대로 힘을 줄 수 없다. 이런 척수 장애 사격 선수들은 실탄 장전 등 사격 발사 이전에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는 보조 요원을 둘 수 있다. 이지석과 사격장에 나란히 서 있던 보조 요원은 바로 아내 박경순(31) 씨였다.

이지석은 2001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재활 과정에서 간호사였던 박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2006년 힘들게 결혼에 골인했다. 이날 박 씨는 때로는 조언을 했고, 그보다 더 많이 기도를 했다. 마지막 10번째 실탄을 총에 넣어 준 뒤에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남편의 발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교만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해 달라’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장내 아나운서가 이지석의 금메달 확정 소식을 알리는 순간 아내는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 세례를 했다. 힘든 세월을 이겨낸 아내의 배 속에는 사랑하는 남편의 6개월 된 아이가 자라고 있다. 남편은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사격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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