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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회복돼도 ‘1인독재’ 균열 불가피

입력 | 2008-09-11 02:58:00



北권력투쟁 가속 ‘포스트 김정일’ 논의 가능성… 집단지도체제 전망도

南대북정책 수정 현상유지 전략서 ‘급변사태’ 대비 정보망 강화 필요

국제공조 강화 6자회담과 별도의 한미-한중 대화틀 준비해둬야


■ 바뀌는 북한문제 ‘패러다임’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일을 계기로 가설(假說)에서 사실(事實)로 바뀌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조짐은 향후 북한 문제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정도와 회복 여부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그러나 그의 신병 이상에 따라 이제 북한 문제는 김 위원장이 건재하던 시절과는 여러모로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은 ‘수령 절대주의 체제’라는 북한의 전근대적인 1인 독재체제에 균열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북정책과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 역시 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을 비핵화와 개혁 개방의 대상으로 보던 과거의 접근 방식을 넘어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와 붕괴까지를 염두에 둔 새로운 대북 정책을 고려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북한 권력투쟁 가속화 불가피=김 위원장은 최근까지도 후계 문제에 대한 일체의 내부 논의를 금지했다. 그러나 66세의 고령인 그가 국가 최대의 경축일에 나타나지 않은 사건은 북한 내부에 ‘포스트 김정일’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그랬던 것처럼 김 위원장도 생전에 후계 문제를 매듭지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은 “김 위원장이 건강을 회복하든 아니든 경쟁자들 사이에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후계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다수의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나이 어린 아들과 권력기반을 가진 측근 사이의 결합 또는 당-정-군 집단지도체제의 등장을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의 장남 정남(37) 씨와 매제 장성택(62) 당 중앙위 부장의 결합과 차남 정철(27) 씨와 이제강(78)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결합이 경합한다는 설 등이 제기돼 왔다. 또 삼남 정운(25) 씨 유력설 등도 나돈다.

이와 관련해 통일연구원은 10일 전체 연구진 회의를 통해 현철해(74) 인민군 대장과 차남 정철 씨의 결합설을 제시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혁명2세대인 현 대장은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혁명 3세대 엘리트들을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후계구도가 평화롭게 진행되고, 차기 정부가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내치를 정상화해 경제적 개혁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 북한과 주변국엔 ‘베스트 시나리오’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유고 또는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후계자 경쟁이 과열되고, 이 과정에서 체제 자체가 와해되는 ‘급변사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대북정책의 목표와 전략도 수정 필요=이런 상황에 대비해 한국도 북한 체제의 현상 유지 쪽에서 현상 타파 쪽으로 정책 변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의 정권 승계를 한국의 국가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대인(휴민트) 정보 강화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 정보 관계자는 “정부가 햇볕정책 10년 동안 휴민트 능력을 잃은 후유증이 이번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의 실체 파악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자생적 변화를 전제로 한 ‘상생·공영’과 ‘비핵·개방 3000 구상’ 등과 함께 북한 급변사태 및 붕괴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의 구상도 필요하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는 “유사시 북한 주민의 대규모 탈북이나 현지에서의 내란사태 등을 예상할 수 있다”며 “정부가 ‘북한 급변사태 대비 계획’을 하루빨리 보완하고 완성해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태세를 완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 국제공조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로=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공조 논의의 외연도 확장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변화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 6자회담상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는 별도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또 다른 논의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사시 북한의 운명은 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타협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으려면 한미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간 ‘개념계획 5029’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필요성이 커진 상태다.

중국과의 공조도 역시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5일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언급한 것은 의미 있는 대목이다.

손광주 데일리NK 편집국장은 “이번 사건으로 북한 문제의 국제적 측면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한국이 주체가 돼 미국과 중국 등을 아우르는 국제적 전략대화의 틀을 마련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화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