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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풍경 20선]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입력 | 2008-09-11 02:58:00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김태수 지음/황소자리

《‘마라손의 왕국 조선의 건아 손기정 남승용 양형은 우리의 무상의 영예! 마라손을 제패햇슴니다. 우리들도 자양의 과자 모리나가 카라멜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선배의 뒤를 이어 오는 날의 올림픽에는 우리들의 힘으로 이 자랑 이 영광을 영원히 직힙시다.’》

믿거나 말거나 ‘요절복통 광고’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국내 신문에 등장한 광고다. 광고주는 일본 제과업체 모리나가. 세계를 제패한 마라토너를 닮기 위해선 영양이 풍부한 캐러멜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1928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초콜릿 광고의 카피는 ‘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이었다. 당시 캐러멜이나 초콜릿 같은 신식 먹을거리는 ‘에너지의 근원’ ‘첨단 영양제’인 것처럼 포장돼 광고에 등장했다.

근대는 모든 게 새롭던 시절이다. 신문광고에는 매일같이 신기한 문물들이 등장했다. 신문광고를 통해 근대의 풍경을 본다는 게 이 책의 취지.

사람들이 접하지 못하던 물건이 대부분이어서 과장 광고가 많았다. 고무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별표 고무신은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는 광고를 냈고, 만월표 고무신은 ‘이강 전하(의친왕)가 손수 고르셔 신고 계시는 신발’이라는 믿거나말거나식의 광고를 게재했다.

1910년대 중반 한 성병약 업체가 ‘성병에 걸린 여자’라며 코가 떨어져 나간 여자의 사진을 실은 약 광고도 과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단성사는 1934년 ‘아가씨 시절’이란 영화를 상영하면서 ‘십 년에 한 번 아니 이 작품은 영화 탄생 이래에 최대 걸작’이란 신문광고를 냈다.

저자는 ‘근대의 풍경을 신문광고를 통해서 재미있게, 어렵지 않게 보여주자’는 콘셉트로 책을 기획했다. 저자의 의도대로 책은 술술 읽힌다. 각각의 주제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다.

1920년 6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기생을 관리하던 권번들의 연합체인 ‘경성오권번연합’ 명의의 광고가 실렸다. ‘기생의 시간대 서비스 요금을 개정했다’면서 ‘한 시간에 1원 30전, 세 시간 반에 4원 30전’이라는 개정 요금을 알리는 광고였다. 기생업이 대중 서비스업이 되면서 박리다매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기생들의 처지가 담겨 있다.

당시의 광고를 보면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사회 양상을 볼 수 있다.

배재학당은 1899년 9월 15일자 독립신문에 ‘원어민 교사를 늘려 영어교육을 강화한다’는 광고를 냈다. 영어가 관리가 되는 데 유용한 도구였던 구한말 당시의 실상을 보여주는 광고다. 일제강점기에 영어는 더욱 붐을 일으켰고 신문에는 ‘금야 영어 인푸레 시대’ ‘뻐쓰의 차장까지도 영어를 배웁니다’ 등의 광고 문구가 잇달았다. 누드 사진집을 선전하는 일제강점기 신문광고는 누드집 열풍이 한창인 오늘날에도 신문에선 보기 어려운 광고다.

‘절세의 미인이 몸에 일사(一絲)도 부치지 아니한 순진 나체사진이외다. 그 풍만한 육체미는 고상하고, 쾌절재득(快絶再得)키 난(難)한 근세의 진사진이올시다.’

‘얼른 절판이 되고, 다시 구하기 어려운 사진’이니 서둘러 구매하라는 내용이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