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한국 사회를 소용돌이로 몰아간 역동적인 반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진전에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자신감 추락에 서글펐다.
쇠고기 파동이 벌어지자 시민은 항의의 촛불을 들었다. 한국의 검역주권을 지키기 위해 초중고교생까지 시위대에 동참했다. 졸속한 협상을 시정하라거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막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과는 달리 한국 사람만이 광우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가졌고, 미국은 자기네가 안 먹는 쇠고기를 한국 사람에게만 팔아먹을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됐다. 자신감이 없어서 먹혀드는 주장이다. 미국은 쇠고기를 강매할 것이고, 우리는 그런 쇠고기를 살 수밖에 없고, 들어온 쇠고기는 먹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이 판다고 해도 우리가 안 사고, 업자가 사온다고 해도 위험하면 안 먹으면 된다는 배짱이 있었다면 좀 더 결연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미국이 강대국이니까 우리가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지만, 미국이라는 대국에 강하게 반대해야만 겨우 우리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소국의식도 버려야 한다. 국제적 기준을 갖고 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정면에서 제기하고 한국을 다른 나라와 동등한 조건으로 대우하도록 요구하면 된다.
쇠고기-독도문제 자문해볼 때
독도 문제가 발생하자 전 국민이 나서서 마치 일본이 금방이라도 독도를 빼앗아 가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이 독도에 관한 행동의 수위를 높였다고 판단하고 정부도 단호한 대응에 나섰다. 최근 만난 일본의 인사들은 입을 맞춘 듯이 일본이 독도를 힘으로 빼앗아 가려는 것도 아니고, 당장 현상 변경을 요구하지도 않는데 한국이 과민 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 독도라는 한국의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마치 우리가 무슨 큰 문제라도 일으킨 거냐’는 듯이 반문하는 일본인의 무감각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일본의 작은 움직임에도 온 국민이 흥분하는 모습이 피해의식과 자신감 결여의 발로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무대응으로 조용하게 지나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독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손안에 있다.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쓰고 국내법적 조치를 취해도 우리가 지배하는 독도를 빼앗아갈 재간이 없다. 자신감을 갖고 일본의 움직임에 냉정하면서도 의연한 태도로 대응하면 된다. 온 국민이 나서서 너나없이 독도지킴이를 자처해야 할 만큼 독도가 흔들리는 영토는 아니다. 왜 독도를 지배하는 우리가 불안하고 초조해야 하는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을 높여가는 중국을 보면서 왠지 움츠러드는 기색도 보인다. 우리를 바짝 따라잡는 세계의 생산기지 중국에 대해 한국이 위기감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성장하는 중국과 보통국가화하는 일본의 사이에 끼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걱정하는 태도는 지금의 한국에 걸맞지 않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자리매김하면 한국은 새우가 아니다. 돌고래 정도는 된다.
일본은 보통국가를 지향하면서 미국을 등에 업고 정치 외교적 영향력 증대를 꾀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보자면 과거사와 영토 문제라는 응어리를 아직도 시원스레 털어내지 못한 나라다. 일본이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상 존경받는 지도국가가 되기 어렵다.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지만 그들의 정치체제와 인권상황, 그리고 사회적 생활상은 국제적 모범국가가 되기엔 아직 멀었다.
피해의식 털고 자신감 회복을
그에 비하면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발전했고 민주주의를 스스로의 힘으로 달성했으며 이젠 국제적인 매력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샌드위치의 가운데에 끼어 언젠가 버림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는 역동성에 날개를 달아 주변국을 끌어안고 갈 만큼의 자신감을 키울 때다.
위기감을 가져야 나태해지지 않지만, 자신감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유연하면서도 강한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신감 회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