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초롱을 만난 것은 지난달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폐막을 이틀 앞둔 펜싱경기장에서였지요. 한국 근대 5종 여자 선수가 사상 첫 올림픽 무대를 밟은 현장이었습니다.
근대 5종은 낯설었습니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난 윤초롱은 오전 8시 30분 첫 경기인 사격을 시작으로 펜싱, 수영, 승마, 육상 등 5종목을 12시간 안에 치러야 했습니다. 새벽밥을 먹고 나와 해가 떨어진 뒤 집에 들어가는 셈이지요. 밥 먹을 새도 없어 선수들은 조직위가 준비한 비스킷과 과일 등으로 틈틈이 배를 채워야 합니다.
19세의 한국체대생인 윤초롱은 그래도 씩씩했습니다. 서양 선수들의 어깨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지만 매섭게 검을 휘둘렀습니다.
근대 5종의 펜싱 경기는 마치 무협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윤초롱은 상대 선수와 단 1합만을 겨룹니다. 1점만 올리면 승패가 갈리고 다른 선수와 다시 ‘1점 싸움’을 합니다. 윤초롱은 35명을 상대로 일대일 승부를 펼친 후에야 펜싱복을 벗었습니다. 펜싱 경기만 2시간이 넘게 걸렸지요.
윤초롱은 “국내에서는 관중도 없고 썰렁한데,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하니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윤초롱은 첫 경기인 사격에서 미처 표적지가 준비되기 전에 격발을 해버려 이번 대회 유일무이한 빵점도 기록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중위권에 오르겠다”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국내를 통틀어 10여 명뿐인 근대 5종 여자 선수를 대표해 나선 그의 어깨에는 개인뿐 아니라 해당 종목의 미래가 걸린 듯했습니다.
윤초롱은 펜싱(22위)과 수영(24위)에서 선전했지만 마지막 종목인 육상 3000m(35위)에서는 부진했습니다. 전체 36명 중 33위가 최종 성적표였지요.
성화는 꺼졌고 올림픽도 추억으로 사라졌습니다. 윤초롱은 실업팀도 없고, 전국체전 정식 종목에도 빠져 있는 척박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그의 도전은 값집니다. 그가 채운 첫 단추 때문에 다음에는 두 번째 단추부터 끼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황인찬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