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형 찾아온 中동포 형제
장례비 등 1000만원 못갚으면
출국못해 불법체류자 될 위기
형이 죽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두 동생에게 아버지 같던 형이었다. 한국에서 돈을 벌면 막내 장가부터 보내겠다던 형은 마흔이 넘은 노총각이었다. 지난해 추석 중국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에 있는 양친의 묘소에서 “돈 벌러 가니 몇 년간 못 뵙는다”며 큰절을 하고 떠난 형이 지난달 부모 옆에 묻힌 것이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4월 18일 오후 중국동포 남광철(42) 씨는 술자리에서 벌어진 싸움을 말리다 화를 못 이긴 동료 조선족의 칼에 허벅지를 찔렸다. 대퇴부 동맥이 끊기면서 과다출혈로 이틀 뒤 숨을 거뒀다.
우애가 깊었던 두 동생은 생업을 놓고 한국에 왔다. 하지만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이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국적이 중국이라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탓에 사흘간의 치료비만 700만 원에 장례비까지 합하면 1000만 원.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범인은 무일푼 일용직 근로자여서 이를 배상받을 길도 없었다.
빚 갚을 길이 막막했다. 형제는 단순 체류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에 취업은 불법이다.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중국으로 돌아가 취업비자 시험에 합격한 뒤 추첨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경쟁도 치열할뿐더러 1년이 넘게 걸린다.
형제는 단속의 눈길을 피해 일용직을 전전했다. 사고 직전 큰형이 보내온 첫 월급 100만 원에 서울남부지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지원금 200만 원을 합쳐 봐도 빚은 여전히 700만 원을 웃돌았다.
이 와중에 둘째 광욱(37) 씨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중국에 있는 여섯 살배기 아들이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동생만 남겨두고 11일 서둘러 귀국했다.
막내 광진(35) 씨는 빚을 다 갚지 못하면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처지다. 타향에서 이승을 하직한 형이 남긴 빚의 볼모가 된 셈. 12월까지 연장한 체류비자마저 기간이 만료되면 그는 불법 체류자가 된다. 고향에 돌아가려면 불법으로 일자리를 찾고 돈을 벌어 빚을 갚는 수밖에 없다.
광진 씨는 “추석 때 형님 영정이라도 안고 부모님 묘소를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슬픔만 이겨내면 되는 줄 알았던 그에게 올해 추석은 너무나 힘겨워 보였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