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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남성일]노조가 살아남으려면

입력 | 2008-09-16 03:00:00


틱낫한 스님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엄마가 심하게 우는 아이를 보듬어 달래듯 먼저 화를 꼭 껴안아주라고 한다. 우선 감정을 받아주라는 얘기다. 파업에 나선 노조원이 허공에 내지르는 주먹질을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틱낫한 스님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주먹질이 어쩐지 공허하게 보이고 측은한 생각이 든다.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 지난 20년 동안 우리 노동계는 아직도 주먹질로 일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허하고 측은한 주먹질 없어져야

노동계를 보는 세상의 눈이 옛날 같지 않음을 지도자도 느끼는 것일까. 최근 동아일보가 대기업 노조위원장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5.6%의 위원장이 노동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현재의 노동운동 방식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노조위원장들 스스로가 개선해야 할 문제점으로 정치 사회 문제와 관련한 교섭, 불법폭력 파업, 파업기간 임금손실의 편법적 보전, 산별교섭에 따른 이중교섭과 파업을 꼽았다. 이 조사결과는 현직 노조위원장들의 의견이므로 더 의미가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제 전성기가 지났다. 보름달을 지나 하현달로 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낡은 이념과 운동방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흐름에서 이탈하고 있다. 계절은 가을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여름인 줄 알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민족사회주의라는 좌파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쇠고기 수입처럼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정치문제에 기를 쓰고 파업이라는 강수를 쓴다.

이를 보는 사회의 눈은 싸늘하다. 7월 민주노총 깃발부대가 촛불시위를 주도하면서 촛불은 오히려 사그라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가 하면 일부 대기업노조에서는 협력업체 및 수출을 볼모로 매년 파업을 반복하여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독점 노조적 행태를 보인다.

노조위원장들도 이제는 변해야 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21세기 노동운동의 화두는 생산성과 서비스, 이 두 단어로 요약된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는 생산성이야말로 노사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최고의 상생전략이다. 생산성이 높아야 기업경쟁력이 높아지며 복지도 좋아지고 고용도 늘어난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제도 개선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한 개의 생산라인에 한 개의 차종만을 고집하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도요타자동차처럼 여섯 개의 차종까지 생산하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또 생산성과 보상이 일치하는 등가의 원칙이 지켜지는 인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능력과 노력을 기준으로 하는 인사제도 혁신은 시대적 대세이다. 그리고 평가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무능력자에 대한 퇴출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가는 수문이 막혀 있으면 들어오는 수문이 작동할 수가 없다. 들고 나감이 원활해야 조직이 생기가 돌고 청년취업도 활발해질 것 아닌가.

기업엔 생산성, 근로자엔 서비스

또 노동조합은 조합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기업의 인사경영권을 나누어 갖겠다는 권력 욕구를 자제하는 대신 근로자가 인사경영 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불합리한 처분을 당하는 경우 근로자를 대변하여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급단체도 협상권은 개별 기업에 놔두는 대신 보험이나 직업 전망 등 근로자가 관심을 두는 복지에 대해 큰 규모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같은 변신은 노동조합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에 필요한 생산성을 제공하고 근로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업경영의 진정한 동반자로서 오랜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