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박천홍 지음/산처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못지않게 철도가 세계에 기여한 점이 있다. 바로 ‘민족’의 출현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것처럼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다. 민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발견이 전제되어야 한다. 국외자와 자신이 속한 집단 사이의 차이가 발견됨으로써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이 성립하게 된다. 철도는 지역과 국가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지역적 고립을 극복하고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식민지 모순의 상징 ‘조선철도’
세계사에서도 19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철도는 혁명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증기기관에 이르러 인간은 드디어 인공 동력을 만들어냈다. 인류와 물자의 이동을 가로막던 지리적 자연적 장벽도 철도로 인해 무너진다. 저자의 말처럼 철도는 “지역과 국경의 경계선을 넘어 자본의 정신을 세계로 퍼뜨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광무 3년(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철마(鐵馬)의 첫 기적소리는 이 땅에 근대의 새벽을 깨웠다. 당시 경인선 열차에 올라탔던 독립신문 기자가 ‘형형색색 황홀 찬란하다’며 찬탄을 멈추지 않은 것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철도 굉음이 지신(地神)을 깨운다”는 평민들의 우려에도 지식인들은 근심보다 기대가 더 컸다.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으로 철도가 연장되며 지식인들은 철도를 ‘근대의 표상’으로 대한다. 육당 최남선은 1908년 창가 ‘경부철도가’까지 지어 노래한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 기차와 기차역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대의 새벽을 알리는 기적소리는 동시에 “식민지의 어둠을 예고하는 불길한 소리”였다. 조선이 철도를 세우는 주체가 되지 못할 때부터 불길함은 시작됐다. 일본에 조선의 철도사업은 ‘한국 경영의 골자’였다. 일본 통치자들에게 철도는 조선을 지배하는 수단이자 중국 대륙과 러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역사학자 F A 매켄지가 “제국주의적 통치의 가장 거칠고도 가장 무자비한 모습”이라고 일컬은 일본제국주의는 철도공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1906년경 철도공사장을 여행한 한 일본인 고등학생마저 “(조선인이) 일본 공부가 휘두르는 곤봉에 얻어맞아 허무하게 이슬로 사라져가는 약육강식의 현장”이라고 몸서리칠 정도였다.
“조선 철도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침략과 지배, 수탈과 분열, 탄압과 차별이라는 식민지의 모순을 실어 나르는 슬픈 기관이었다. ‘동아일보’ 1923년 3월 6일자 사설에서 ‘조선 사람이 의지하여 수입의 원천을 짓는 교통기관이 아니라 다소의 편리를 이용하여 조선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주머니를 빼앗아가는 교통기관’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듯 우리에게 타율적 근대화의 대가는 컸다.”
이 책은 철도를 매개로 한반도의 20세기 초를 들여다봤다. 철도는 새로운 문명의 축복이자 식민지 백성의 삶을 덮친 칼이었다. 이는 철도가 아닌 근대를 대입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주권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근대는 아무리 번듯해도 그늘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근대는 조선 민족의 비애와 아픔을 먹고 자란 꽃이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