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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숙청에 충성경쟁… 끄떡없는 ‘수령의 나라’

입력 | 2008-09-16 03:08:00



■ 北 권력엘리트 왜 동요없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에서 권력엘리트들이 동요하는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측근’들에게 권력과 돈 등 인민들은 상상하기 힘든 특권을 부여하는 반면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못하도록 조직적인 감시와 통제를 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이 비록 자리에 누웠지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든 철저한 감시와 통제의 시스템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보 관계자는 15일 “아직 아무도 병난 ‘수령’에게 덤비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가 심각해지면 권력엘리트 내부의 경쟁과 견제 구조에 파열음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권력엘리트에 대한 통제와 감시 시스템=1974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김 위원장은 아버지를 신격화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했다. 그가 그해 발표한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은 권력엘리트에 대한 견제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어떤 권력엘리트도 오로지 ‘수령’만을 위해 일해야 했고 개별 간부의 우상화는 철저하게 금지됐다. 종파(宗派)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 등도 배격됐다. 탈북 고위 관료인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의 저작에 따르면 10대 원칙은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됐다.

김 위원장은 매제인 장성택(62)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장에게 힘이 쏠릴 것을 우려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결과 장 부장은 1970년대에 강선제강소에 보내져 1년 동안 ‘혁명화’ 노동을 했다. 그는 2004년에도 이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과 권력다툼을 벌이다 1년가량 자리를 비워야 했다. 김 위원장과 측근 간의 직보(直報)와 승인의 체계도 마련됐다. 측근 간부는 사적인 가정사까지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등의 조직적인 감시와 통제도 뒤따랐다. 측근들은 자택과 사무실 등이 늘 도청됐다.

한편 측근에 대한 엄청난 특권은 비측근의 열등감과 질투를 유발했고 측근의 비리에 대한 밀고와 고발을 유도했다. 김 위원장은 수시로 권력기관에 대한 검열과 사정을 통해 비리가 드러난 권력엘리트를 숙청했다. 2007년 이후에도 사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에서는 ‘간부만 되면 친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측근이 되면 말과 행동, 인간관계를 신중히 해야 한다”며 “북한 간부들은 최근에도 ‘거동 이상자’로 의심을 받아 밀고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극도로 몸을 낮추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복한 세 가지 경쟁 구조=그러나 수령에 대한 충성을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북한 간부들은 치열한 경쟁의 관계였고 따라서 이들 속에는 다양한 이합집산과 견제의 구조가 잠복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개인별, 기관별 경쟁의 구조다. 특히 1990년대 경제난에 따라 모든 권력집단이 ‘충성의 외화벌이’ 경쟁을 벌여 왔다. 다음으로 출신에 따른 경쟁과 갈등이다. 인민군 내부에도 당 출신 엘리트와 군 출신 엘리트 사이에 갈등과 알력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에 관한 경쟁과 갈등이다. 대외관계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우선 강화해야 한다는 측과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측이 맞설 수 있다. 경제정책에서 개혁·개방을 놓고 이견이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당과 내각 등에서 차출된 개혁파가 김 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개혁파들은 “이런 가난한 나라를 만들려고 우리 선배들이 피를 바쳐 혁명을 했느냐”고 보수파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최근 10년 동안 지속된 남북의 밀월관계가 주춤하고 내부 경제개혁도 추동력을 잃은 시점에서 쓰러졌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병상 밖에서 북한의 권력엘리트들이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