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과 메릴린치 매각,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의 신용등급 하락 등 초대형 악재들이 격발한 월가 발(發) 금융위기가 16일 세계 증시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자금부족에 허덕이는 외국인들이 주식을 투매해 코스피는 1,400선이 붕괴됐고 원-달러 환율은 1160원 대로 급등(원화가치는 하락)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와 유럽 각국 증시도 폭락을 면치 못했다.
16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90.17포인트(6.10%) 하락하며 연중 최저치인 1,387.75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하루 하락폭은 한국 증시 사상 3번째, 올해 들어서는 가장 큰 것이었고 종가 기준 주가는 지난해 3월 5일(1,376.15) 이후 1년 6개월여 만에 최저였다.
코스닥지수 역시 전 거래일보다 37.62포인트(8.06%) 내린 429.29로 마감, 올해 들어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날 하루 코스피 시장에서 45조7974억 원, 코스닥시장에서 5조6256억 원 등 총 51조4231억 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6071억 원 어치 주식을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입액을 뺀 것)하며 투매를 이끌었다. 이날 오전에는 선물(先物)가격 급락으로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을 5분 간 정지시키는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 영상취재 : 임광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주식을 판 외국인들의 송금 수요가 몰려 원-달러 환율은 폭등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인 12일보다 달러 당 50.90원 오른 116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전 거래일 대비 상승폭은 1998년 8월 6일(67.0원) 이후 10년 1개월 만에 최고였고, 종가 기준 환율이 1160원대에 오른 건 2004년 8월 13일(1162.3원) 이후 4년 1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원-엔 환율도 12일보다 100엔 당 79원 오른 1112.07원으로 2004년 1월 26일 이후 4년 8개월여 만에 처음 1160원대로 뛰어올랐다.
아시아 각국 주가도 폭락세를 보였다. 전날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이 4년 만에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내리며 경기 부양으로 돌아섰지만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는 4.47% 급락한 1,986.64로 마감해 2,000선이 붕괴됐다.
이에 앞서 리먼이 파산보호 신청을 낸 1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지난주 종가보다 504.48 포인트(4.42%) 내린 10.917.51으로 급락했다. 9·11 사태 직후인 2001년 9월 17일 이후 하루 기준 최대 하락폭이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AIG의 신용등급을 2,3계단씩 낮추면서 위기가 더 확산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계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은 지난해 6월 이후 신용경색으로 발생한 세계 주요 금융회사들의 손실과 향후 발생 손실이 총 1조5000억 달러(약 1740조 원)로 불어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놨다.
이런 점 때문에 16일(현지시간) 열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유동성을 늘려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 ‘미국發 쇼크’ 주가 폭락 기록 속출 ▼
미국 발(發) 쇼크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16일 한국 증시에서는 각종 기록이 속출했다.
우선 주가 폭락으로 시가총액이 급감했다. 이날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한 시가총액은 770조5475억 원으로 직전 거래일인 12일에 비해 51조4231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날 장 초반에는 주가가 급격히 떨어지자 시장충격을 줄이기 위해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두 시장 모두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지난해 9월 16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코스피는 개장 직후 전 거래일보다 96.68포인트(6.54%) 폭락한 1,381.24로 출발해 장중 한 때 1,370대까지 떨어졌다 소폭 상승해 1,387.75에 마감됐다.
개장 직후 지수인 시가(始價) 하락률로는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12일(9.33%)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종가(終價) 기준 하락률로는 올해 들어 최대치인 것은 물론 지난해 8월 16일(-6.93%) 이후 최대치였다. 종가 기준 하락 폭으로는 지난해 8월 16일(-125.91포인트)과 2000년 4월 17일(-93.17포인트)에 이어 사상 3번째로 컸다.
이날 코스닥지수 하락률(-8.06%)도 올 들어 최고 수준이고 지난해 8월 16일(-10.15%)에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