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조재현의 배우열전]연극-영화 종횡무진 오달수

입력 | 2008-09-18 02:59:00

연극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에 출연하는 오달수 씨(오른쪽)는 “사투리가 섞인 독특한 말투 때문에 대사에 자신이 없는데 이번 작품은 번역극이라 더욱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연극이 집이라면 영화는 직장”

최근 한 영화잡지에서 배우 인터뷰 사진들을 모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조인성 같은 미남배우들이 멋을 부리고 있는데 오달수(40)는 눈을 감은 사진들뿐이었다. 그것도 게슴츠레 눈을 반쯤 뜨다 만 이른바 ‘굴욕’ 포즈였다. 그런데 그의 사진 밑에 가장 많은 댓글이 붙었는데 하나같이 ‘오달수 짱이다’ ‘압권이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영화 ‘올드보이’를 비롯해 오달수가 맡았던 역은 대부분 악당이다. 하지만 망가져도, 악독해도 대중을 환호하게 만든다는 것, 배우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오달수의 그런 점이 나는 늘 부러웠다.

▽조재현=오달수라는 배우는 친숙한 이미지를 주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오달수=요즘 연극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연습 때문에 집과 대학로를 버스와 지하철로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도 신경 안 써요. 한 번 쓱 쳐다보는 정도? 저를 그렇게 편안하게 봐준다면 저도 편하고 좋죠.

▽조=‘신기루 만화경’이라는 극단을 10년째 이끌고 있잖아요. 극단 형편이 넉넉지 않은데 작품을 20여 편이나 했더라고요. 그 동력이 뭐죠.

▽오=단원들이 오래 고생해서 그런지, 한식구라는 생각이 강해요. 있는 만큼만 쓰고 서로 사정을 이해해줘요. ‘바늘구멍 사진기’ 같은 작품은 출연배우가 9명인데 제작비가 30만 원밖에 안 들었어요. 이건 식구들의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한 거죠.

▽조=내가 금기시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배우는 숫자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 회식비가 얼만지, 전기료가 왜 이리 많이 나왔는지 자꾸 신경을 쓰면 배우의 뇌를 침범당하는 것 같거든요. 달수 씨는 극단을 꾸려야 하는데 혹시 영화 촬영하다가 그런 게 신경 쓰이고 그러진 않나요.

▽오=빚지지 말고 있는 만큼만 일을 벌인다가 제 신조예요. 아까 30만 원 공연도 그렇게 나왔고요. 우리 극단은 사무실도 없어요.

▽조=솔직히 달수 씨는 영화로 버는 돈이 있으니까 괜찮지만 극단 후배들은 대부분 생활이 힘들잖아요. 어렵다고 하소연도 할 텐데 그럴 땐 뭐라고 말해주나요.

▽오=버티라고, 무조건 버티라고요. 후배들이 하소연 많이 하죠. 그러면 제가 영화할 때 부탁해서 단역으로 후배들 출연시키기도 해요. 그런데 내가 죽으면 어쩔 건데요? 그래서 10년 이상 버티기 싫으면 배우 하지 말라고 하죠. 말은 그렇게 해도 걱정 많이 돼요. 가정 꾸리고, 애 있는 후배도 있는데…. 게다가 요즘은 방송도, 영화판도 다 힘들잖아요. 그래도 버티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쩌겠어요.

▽조=연극을 하다가 영화나 TV에서 스타가 되면 연극무대로 안 돌아오는 사람이 많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다 이유가 있겠죠 뭐. 전 연극하다가 부업 삼아 영화와 TV를 했거든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저에겐 연극이 집이라면 나머진 직장이에요. 직장에서 집에 안 오는 사람이 있나요.

▽조=오달수 하면 외모뿐 아니라 화술도 독특하잖아요. 완벽한 표준어도 아닌 특유의 독특한 말투가 달수 씨만의 특허가 됐죠. 하지만 고민은 많았을 것 같아요(대구 출신으로 부산에서 자란 오달수는 그곳 사투리를 군데군데 쓰고 있다).

▽오=배우 초년병 시절에 어떤 연출가가 “무슨 그런 화법을 하고 있어, 당장 고향에 내려가”라고 소리 질렀는데 굉장히 큰 상처였어요. 표준어도 안 되고 ‘ㄹ’발음도 잘 안 돼 저도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며 힘들어했더니 연출가이신 이윤택 선생님이 달리는 포즈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열심히 하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지금 배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객이 제 말을 잘 알아들을지 불안해요.

▽조=저도 대학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배우를 하고 있어 그런지 핸디캡이 많아요. 내 대사가 과연 객석 끝까지 잘 전달될까에 대한 공포도 많고요. 하지만 발성이나 말투보다 대사에 내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말의 진정성을 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오=아니, 아니, 선배님은 워낙 좋으면서…. 그렇게 비교를 하시면 안 되죠(웃음).

연극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10월 3일 오후 7시 반, 4∼5일 오후 4시, 7시 반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3673-2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