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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앞쪽형 인간

입력 | 2008-09-18 02:59:00


1935년 런던에서 열린 신경과학회에서 미국의 뇌과학자 존 풀턴은 난폭한 원숭이의 앞쪽 뇌, 즉 전두엽 일부를 제거하면 온순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강연에 감명받은 포르투갈 출신의 신경과 의사 에가스 모니스는 고국으로 돌아가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분열증 및 편집증 환자들에게 똑같은 시술을 했다. 환자는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이 공로로 모니스는 1949년 동료인 발터 헤스와 함께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시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환자들은 기억력 운동능력은 그대로였지만 판단력이 이상해졌다.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변했으며 매사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술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심한 충격을 받고 돌아온 군인에게까지 남용됐다. 195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만 4만 명 이상이 시술을 받았다. 뇌에서 떼어내도 생명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던 이 부위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고등두뇌, 즉 전(前)전두엽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은 시일이 10년 정도 흐른 뒤였다.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교수가 쓴 책 ‘앞쪽형 인간’이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뇌과학을 전공하는 나 교수는 나라에 리더격인 최고경영자(CEO)가 있듯 뇌에도 CEO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앞쪽 뇌(전두엽)라고 말한다. 나 교수는 전두엽치매 환자들에 대한 임상경험을 통해 우리 몸에서 앞쪽 뇌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충동조절장애, 도박중독, 섹스중독, 조급증, 관음증, 폭식 등 온갖 증세가 전두엽 기능 상실에서 온다는 것이다.

▷앞쪽형 인간의 반대편에는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뒤쪽 뇌가 발달한 뒤쪽형 인간이 있다. 전형적 뒤쪽형 인간은 사춘기 아이들이다. 10대는 몸은 어른이지만 전두엽은 가장 늦게 발달하기 때문에 뇌구조는 뒤쪽형이라고 한다. 10대 자녀가 매사에 무기력하고, 공부도 안 하고, MP3플레이어만 끼고 있다면 아이를 나무라기보다는 전두엽을 자극하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 앞쪽 뇌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TV를 끄고 신문이나 책을 읽으라’고 나 교수는 권유한다. CEO가 똑똑해야 조직 전체가 발전한다는 것이 어디 뇌만의 일이겠는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