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이달 16일 곤혹스러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초 19일로 예정했던 고성능 스포츠카 ‘제네시스 쿠페’ 발표회를 한 달가량 늦춘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본보 17일자 A10면 참조
▶ ‘파업 몸살’ 현대차 신차 발표 연기
결정 직후 현대차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와 약속한 신차(新車) 판매시기를 연기한 것 자체가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 장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죠.
“창사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야. 아무리 그래도 차는 제때 팔아야지….”, “미국 ‘빅3’꼴 나는 것 아니야….” 등등.
사실 현대차는 이번 파업이 이렇게까지 흘러갈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과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노조원들이 돈 쓸 데가 많은 추석 연휴 전에는 파업을 끝내고 정상조업에 나설 것으로 봤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예상은 무너졌습니다. 노조원들은 추석 연휴 전 타결로 받을 ‘푼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측을 시간적으로 압박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파업을 선택했지요.
재계에서는 현대차 노사 문제와 관련해 노조는 물론 사측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동안 사측이 노사 문제가 생기면 ‘원칙’보다는 ‘편법’으로 해결하려고 해 노조의 ‘맷집’만 키워줬다는 거죠.
파업을 빨리 끝나게 하기 위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저버리고, 성과금 명목으로 임금을 보전해준 관행이 대표적입니다. 이 때문에 노조원들로서는 파업을 하더라도 나중에 돈을 다 받을 수 있는 만큼 아무런 ‘부담 없이’ 일손을 놓았습니다. 여기에다 파업을 세게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학습 효과’도 파업 장기화를 부추겼지요.
노동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파업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과거 1980년대 말 파업으로 큰 홍역을 치렀던 현대중공업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해 노사평화를 이룬 것은 물론 세계 1위 조선업체로 발돋움한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죠. 현대차가 이번에는 최소한 ‘일하지 않으면 급여도 없다’는 기본 원칙이라도 확고히 세울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송진흡 산업부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