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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연봉 과학기술인]전산맨서 생물정보학자로 허철구 박사

입력 | 2008-09-19 02:54:00


창고서 만든 고추유전자 DB로 ‘날개’

《산업발전의 초석이 돼 온 과학기술이 최근 의료나 금융 등 다른 전문 분야보다 대우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면서 경제적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는 과학기술인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함께 산업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억대 연봉을 받은 과학기술인 7명을 발굴해 유형별로 소개한다. 연봉 액수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없지만 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들은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청소년에게 흥미로운 역할모델이 될 것이다.》

8년전 며칠 걸리던 유전자 분류 2시간에 끝내

IT기업에 의약품 관련 기술 이전 5억 벌기도

3월 ‘우수연구원’ 뽑혀… 연봉 50% 성과급 받아

○ 1994년, DB 전공한 전산맨(연봉 1779만 원)

난 ‘전산맨’이었다. 데이터베이스(DB)라는 첨단 기술을 배웠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취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첫 직장으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선택했다. 그저 집에서 가까워서다. 경력을 쌓다 큰 기업으로 옮기자 마음먹었다. 급여 프로그램 짜는 일부터 시작했다.

물론 그땐 생명공학의 ‘시옷 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 1997년, 한직으로 밀려나(2730만 원)

1996년 11월, 위암 말기란다. 당장 다음 달에 수술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몸이 그 모양이니 야근 많은 경영관리 부서에서 일하기 힘들었다.

이듬해 연구직으로 발령이 났다. 좋게 말하면 연구 성과를 전산화하란 뜻이었지만 기술자로선 솔직히 한직으로 밀려난 셈이다.

잘리지 않은 게 어디냐 싶은 생각으로 지내던 어느 날. 한 연구원이 찾아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듣도 보도 못한 걸 만들라니.

어쨌든 주어진 일이니 시작은 했다. 그때까지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밝혀낸 유전자는 약 120만 건. 외국에 공개된 이 데이터를 모아 우리 나름의 DB를 구축했다.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당시로선 큰 의미가 있었다. 국내 연구자들이 해외 웹 사이트를 일일이 찾지 않고도 유전자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거다 싶었다. 전산맨의 눈엔 평범한 알파벳으로만 보인 A, T, G, C에 생명체의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니. 이런 정보는 계속 쏟아져 나올 터. 생물학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DB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생명공학기술(BT)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하는 ‘생물정보학’이 태동하던 때였으니까.

○ 2000년, 고추 유전자 DB 구축(4572만 원)

초보 연구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실 하나 없었지만 내 존재가 달가울 리 없는 연구원에 요청하기도 어려운 상황. 창고를 정리해서 작은 방을 만들었다. 안 쓰는 컴퓨터와 서버를 갖다 놓고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 컴퓨터만 보고 살았던 탓에 생물학은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최신 지식과 생물정보학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논문부터 뒤졌다. 논문의 대부분은 전문용어. 처음엔 3, 4쪽 짜리 논문 한 편 읽는 데 일주일이 꼬박 걸렸다. 불면증까지 왔다.

연구원 박사들에게 책을 빌리고 질문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컴퓨터 만지는 사람이 왜 생물학 논문 갖고 저렇게 호들갑이냐”며 수군거리는 목소리도 많았다.

2000년. 드디어 작은 성과를 냈다. 서울대 최도일 교수팀과 함께 한국 고추의 유전자 DB를 처음 구축한 것. 당시 과학자들이 약 2000건의 고추 유전자 조각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하려면 며칠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 DB를 이용하니 2시간 만에 끝났다.

○ 2006년, 첨단 제약산업 초석 놓다(6934만 원)

2005년 식물유전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했다. 창고를 반납하고 드디어 내 연구실을 차렸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기쁨을 원동력 삼아 이듬해 고추의 특정 부위에서만 활동하는 유전자(조직특이성 유전자)들을 처음으로 찾아내 DB를 만들었다. 이어 지난해에는 사람과 생쥐의 조직특이성 유전자 DB도 완성했다. 이를 이용하면 음식이나 약을 먹은 뒤, 건강할 때와 병에 걸렸을 때 조직별로 어떤 유전자에 변화가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특정 조직에만 정확히 작용하는 약을 개발하는 데도 필수다.

지난해 12월 이 기술을 IT 기업인 에스씨앤티와 위더스텍에 이전했다. 두 회사는 우리 연구원에 선급실시료 5억 원을 지급했다. 지금까지 연구원에서 받은 선급실시료 중 최대 규모다.

○ 2008년, ‘우수연구원’으로(1억1502만 원)

기술 이전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3월 ‘우수연구원’에 선정됐다. 탁월한 성과를 낸 연구원을 매년 선정해 연봉의 5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주는 이 제도는 대덕 지역 정부 출연 연구원 중 처음으로 우리 연구원에서 시작됐다.

이와 함께 10여 명의 연구원과 첨단 컴퓨터 장비를 이끄는 오믹스융합연구센터장이 됐다. 날개를 단 셈이다. 창고에서 쓰던 컴퓨터와 지금의 시스템을 비교하면 자전거와 그랜저 격이니 말이다. 평범한 전산맨이던 내가 생물정보학자로 ‘변신’할 수 있게 도와준 연구원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한국의 생물정보학은 여전히 초기 단계다. 그렇기에 내가 더 할 일이 많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주목! 이 기술▼

허철구 박사팀이 2000년 개발한 고추 유전자 DB를 계속 발전시킨 덕분에 한국이 2004년 ‘가짓과 식물 유전체 국제컨소시엄’에 가입됐다. 이로써 고추와 감자 토마토 등 가짓과 식물의 전 세계 유전자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올해 6월에는 천연물이 건강에 좋은 근본적인 이유를 생쥐 유전자 DB를 이용해 분석하는 기술을 LG엔시스에 이전하기로 계약했다. 이들 성과는 국내 농업과 제약산업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 허철구 박사는

1961년 10월 경북 경주 출생

1980년 2월 대구공고 졸업

1990년 2월 충남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1994년 11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행정기술원 입사

1995년 8월 충남대 전산학과 졸업(석사)

2001년 9월∼2003년 1월 국가유전체정보센터 사업지원실장

2003년 3∼8월 숙명여대 생명과학과 겸임교수

2004년 2월 부산대 생물정보학과 졸업(박사)

2004년 3월∼2005년 2월 충남대 생물학과 겸임교수

2008년 3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믹스융합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