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세계에는 으레 연극과 연기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의 사임과 자민당 총재 경선은 정치 픽션 중에서도 새로운 수준을 보여줬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짓투성이다.
후쿠다 총리는 왜 사임했을까. 자민당 안에서는 7월부터 후쿠다 총리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결국 자민당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총리를 바꾼 것이다. 새 총리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여론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시니컬한 권력 조작도 드물다.
이 정변(政變)의 실질은 후쿠다 총리로부터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간사장으로의 권력 이양이다. 지난해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권을 내팽개쳤을 때도 국민들 사이에서는 후쿠다 총리의 인기가 낮고 아소 간사장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소 간사장은 대외적으로 한국, 국내적으로는 차별을 받는 마을에 폭언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총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 난폭한 발언은 만화 감상 등의 취미와 함께 ‘국민에 보다 가까운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원인이 됐다.
이번 총재 경선은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아소 간사장의 우위가 처음부터 압도적이어서 다른 입후보자는 총재 경선이 아니라, 그 후 있을 총선을 위해 이름을 파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닐까 하는 관측도 있다.
그리고 누가 총재가 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일본 정치의 최대 문제는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다수당이 다른 ‘뒤틀린 국회’이다. 이 상황은 총선 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가령 아소 간사장이 총재가 됐다고 가정해 보자. 후쿠다 총리보다 지지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총선으로 자민당이 참의원에서 다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뿐인가. 총선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해 3분의 2를 확보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현재 3분의 2 의석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아래서 치러진 ‘우정(郵政) 선거’라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의 산물이다.
참의원에서 반대한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의결하려면 3분의 2 의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총선 후에는 재의결이 불가능해진다. 참의원이 실질적으로 법안을 폐기하는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아소 간사장이 새 총리가 되더라도 아소 정권은 후쿠다 정권 이상으로 약한 정권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총선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비(非)자민 정당이 이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얻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현재의 민주당은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는 것마저 어려운 처지다. 따라서 비자민 정권이 탄생해도 오른쪽은 국민신당과 신당대지, 왼쪽은 공산당과 사민당이라는, 수만 많을 뿐 사고방식도 정책도 전혀 다른 정당을 긁어모은 것 같은 연립정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연립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가능한 한 정당의 수가 적고 정책이 비슷한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비자민 정권은 공명당과 연립하는 것을 제외하곤 수는 많고 정책은 이질적인 정당의 연합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소(小)정당이 이탈하면 정권은 바로 붕괴한다. 비자민 정권이 태어나도 안정된 내각이 탄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총리가 사임해도, 자민당이 총재 경선을 해도, 나아가 총선을 치러도 일본의 정치 불안정이 해소될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기본적인 딜레마를 외면하면서 총재 경선에 일본 정치의 장래를 기대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는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