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그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원(原) 자료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교과위) 소속 의원들에게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제 교과위에 출석한 안 장관은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수능 원 자료를 요구하자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정책 자료로만 활용해 달라’는 전제를 달았다. 수능 원 자료 공개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던 교과부가 한걸음 물러서 ‘정책 수립’ 또는 ‘연구’용으로 공개하겠다고 한 것은 진일보한 자세로 평가받을 만하다.
해마다 수능을 치르고 나면 전국 수험생들의 성적 자료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컴퓨터에 그대로 남게 되는데 이 원 자료를 분석하면 전국 고교의 학력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어느 고교의 평균 점수가 얼마인지, 시도 중에서 어느 지역이 평균 점수가 높고 어느 지역이 낮은지 알 수 있다.
교과부는 이렇게 되면 학교 서열이 매겨져 과열 경쟁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그동안 버텼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력 격차를 무조건 감추는 태도는 학부모와 학생을 속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과부는 조 의원 등이 수능 원 자료 공개를 청구한 소송에서 1, 2심 판결에 패배하고 대법원 판결도 패배가 거의 확실해 더 버티기도 어려웠다.
수능 원 자료를 분석하면 그동안 쉬쉬하던 고교별 지역별 성적이 드러나 성적이 떨어지는 고교와 시도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성적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료 공개는 학생 학부모 같은 교육 수요자에겐 득(得)이 되는 정책이다.
특히 평준화 지역인 서울시는 고교선택제 도입을 앞두고 있다. 고교선택제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학교 정보가 필수적이고 학교별 수능 평균 점수는 핵심적인 정보다.
평준화 30년의 폐해를 계속 덮어두려고만 해서는 미래 세대에 경쟁력 있는 교육을 하기가 어렵다. 교과부는 심각한 학력 격차의 실상을 있는 대로 공개한 뒤 취약 지역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 수능 원 자료를 국회의원에게만 줄 게 아니다. 학부모들도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교육 당국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