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구에서 ‘유명 인사’를 만났다. 요미우리 이승엽(32)의 아버지인 이춘광(65) 씨.
대구 곳곳에서 그를 몰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 음식점에 갔을 때 경북대의 한 교수가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한 보험설계사는 한참을 기다리다 악수를 한 뒤 자리를 떴다. 음식점 주인은 손수 만든 차를 대접하고서야 음식값을 받았다.
이들은 이 씨와 친분이 없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영웅의 아버지’라는 건 안다. 한결같이 “승엽이는 이 선생님의 아들이자 대구의 자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껄껄 웃었다. ‘국민타자’를 아들로 둔 덕분에 호사를 누린다며 쑥스러워했다.
그가 항상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가슴 졸인 적도 많았다. 베이징 올림픽 때가 그랬다. 이승엽은 올림픽 야구 대표팀 4번 타자로 국민을 울리다 웃겼다. 한국이 9전 전승의 퍼펙트 우승을 할 때까지 그는 앞선 7경기에서 실망스러웠다. 방망이는 연방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이승엽의 진가는 위기에서 나왔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역전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에서 선제 2점 홈런을 날렸다. 모두 결승 홈런이었다.
아들을 숨 죽여 지켜보던 아버지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승엽이 일본과의 준결승전 홈런은 “공이 방망이에 와서 맞아줬다”고 말했던 것처럼 “하늘이 아들의 진심을 들어준 것 같다”고 이 씨는 생각했다.
이승엽은 아버지에게 1군 복귀 소식을 전한 14일 야쿠르트 전에서 솔로홈런, 16일 요코하마 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런 아들이 이 씨는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승엽이는 올해 왼손 엄지 수술 후유증으로 일본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시즌 막판에 팀의 승부사로 거듭나리라 믿어요. 베이징에서 조상과 국민의 기를 받아 힘을 냈던 것처럼 말이죠.”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