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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USA 가속…시험대 선 ‘엉클 샘’

입력 | 2008-09-19 02:55:00

17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도로에 ‘차량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인다. 이날 뉴욕 증시는 투자자들 사이에 ‘또 어떤 회사가 쓰러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하면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9000억달러 쏟아붓고도 신뢰 못얻어

등돌린 외국인, 채권시장 10년만의 순유출

S&P “하늘이 내린 AAA등급은 없다” 경고

○“美 신용등급, 보증수표 아니다”

미 정부가 부도 위기에 몰린 세계 최대 보험사 AIG에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겠다는 ‘호재’를 내놨지만, 18일 세계 금융시장은 미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 들어 미 정부는 줄도산 위기에 내몰린 미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9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오히려 세계 최고의 신용등급을 가진 미 정부의 신용에 대한 의구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존 체임버스 국가신용등급위원회 의장은 1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850억 달러에 이르는 AIG 구제금융이 미국의 재정 상태를 약화시켰다”며 “미국의 ‘AAA 등급’에도 압박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늘이 내린 AAA 등급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 역시 다른 나라처럼 이를 따내야 한다”며 미국의 최고 신용등급이 무조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S&P는 이달 초 미국의 신용 위험을 거론했지만 신용등급은 기존처럼 ‘AAA 등급’을 유지한 바 있다.

흔들리는 신뢰는 미 국채에 대한 시장의 반응으로 나타났다. 10년 만기 미 국채에 대한 신용디폴트스와프(CDS·채권 부도 시 대리변제해주는 조건의 파생상품) 스프레드는 0.03%포인트 오른 0.26%포인트로 뛰어 신용위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했다. 금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되던 미 국채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셀(Sell) USA’와 눈 덩이 재정적자

미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은 재정적자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백기사’로 나섰지만 자신의 재정 적자를 해소할 길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CBS뉴스 인터넷판은 이날 “엉클 샘(미 연방정부의 별칭)이 안고 있는 부채는 9조634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며 “올 한 해 납세자들이 국가 부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 2300억 달러 이상을 부담해야 할 처지”라고 보도했다. 특히 공적자금 투입 등이 이어지면서 이달 말로 끝나는 회계연도 재정적자가 역대 최고인 40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 시장에 불안을 느낀 ‘셀 USA’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미 시장에서 약 748억 달러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지난해 8월 1625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외국인들이 미국의 주식과 채권에서 돈을 빼내며 해외자금의 대미 증권 투자가 256억 달러의 순유출을 보였다. 특히 미 채권시장에서 외국인들은 198억 달러를 빼내 1998년 8월 이후 처음으로 순유출이 나타났다.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가 빠져나가도 자본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 순유입으로 버티는 미 경제의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에 균열이 보인 것이다. 이 같은 외국인의 ‘셀 USA’가 장기화한다면 달러화 가치가 무너지고 달러의 기축 통화로서의 가치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제국 미국을 덮친 ‘금융 쓰나미’

달러화와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 정부가 금융위기에 대응하며 보여준 일관성 없는 태도도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17일 사설을 통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은 거대한 세계 ‘금융 쓰나미’의 임박을 암시하는 것이라며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금융질서를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는 미국의 금융관리 및 감독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다원화된 통화 및 금융시스템을 마련해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금융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미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지만 신용등급이 급락하거나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이 쉬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9일 보고서에서 “(기축통화 발권국이기 때문에) 외화 부채가 없고, 자국 통화로 지속적으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능력도 있어 가까운 장래에 신용등급에 위협은 없다”고 평가했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달러화를 대신한 기축통화가 마땅치 않고 미국의 재정적자 악화도 앞으로 1∼2년에 공적자금이 회수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용 기자 park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