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 첫눈에도 풀과 나무들이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곳.
풀산딸나무의 흰 꽃이 만발한 숲길을 걸어 도착한 오제누마에는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사스래나무가 늪과 연못을 사랑스레 감싸안고 있다. 또 꽃들은 나무의 호위를 받듯 늪 가운데에 피어 있다. 순황색, 흰색, 푸른 보라색, 담홍색, 진홍색, 때로는 색을 구별짓기 어려운 빛깔로.
순황색의 각시원추리 사이로 황새풀의 흰 솜 같은 꽃이 바람에 날린다. 끈끈이주걱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꽃을 피웠다. 그 꽃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라도 하듯.
장지석남은 담홍색 꽃을 주렁주렁 달고 늪 가운데 모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반면 큰방울새난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요염한 진홍빛으로 피어 초록의 늪에서 요정처럼 빛난다. 그 유명한 오제의 물파초는 어느새 도깨비 방망이 같은 열매를 달고 파초 닮은 잎을 시원스레 활짝 펼쳐 오제 늪의 여름을 구가한다. 늪을 가로지르는 물길을 따라 핀 조름나물은 미나리꽝의 미나리처럼 싱싱하다.
동행한 현지 식물학자 도미나가 씨. 그는 어떤 꽃보다도 각시원추리를 자랑스러워했다. “닛코기스케입니다. 오제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지요. 니가타가 자랑하는 식물이고요.” 닛코기스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각시원추리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랑받는 이 꽃. 무리지어 더 아름답던 이 꽃 풍경이 세 그루 침엽수가 우뚝 선 목도와 어울리면서 선경으로 승화했다.(위 사진 속 풍경)
각시원추리의 황금 물결, 오제연못의 푸른 물결, 그리고 그 둘을 가르듯 그 사이에 의연히 선 세 나무. 일본 식물도감에도 등장하는 오제누마의 풍경이다. 아름다운 들꽃 앞에 서면 마음 깊은 곳의 마른 진흙처럼 굳은 앙금이 봄눈 녹듯 사라진다. 오제를 걷는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은지….
오제의 아름답고 평온한 풍경이 내 속에 늪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늪에 그날 본 꽃을 불러들인다. 그날의 행복한 꽃들. 그들은 지금 내 속에 피어 있다.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 소장, 강은희 한국야생화연구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