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의 꽃은 장타’다. 300야드를 날아가 페어웨이 한복판에 떨어지는 통쾌한 샷은 누가 봐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장타자는 야구에서 홈런타자와 같다. ‘한방’으로 승부를 뒤집는 홈런타자처럼 장타자는 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모두 열광케 만든다. 하지만 달리 보면 홈런타자는 삼진도 엄청 당한다. 홈런타자에게 삼진은 자랑스러운 훈장이지만 골프의 장타자에게 결정적인 순간 한 번씩 나오는 ‘OB’는 헛심을 빠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골퍼들이 ‘장타’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힘’과의 함수관계 때문이다. 남자의 세계에서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더더군다나 ‘힘’이라면…. 15일 일본 시즈오카현 토메이골프장에는 1야드에 희로애락을 즐기는 ‘진짜 남자’들이 모였다. “골프는 무조건 멀리 보내는 게임”이라고 외치며 한방의 쾌락에 빠진 ‘괴력의 사나이’들이 화끈한 장타대결을 벌였다.
○‘화끈한 타격전’…어드레스때도 갤러리 환호 당연
일본의 장타대회는 소문처럼 볼거리와 재미가 넘쳐났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일본 장타자 선수권대회는 국내의 장타대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역 예선부터, 최종 예선, 본선 그리고 결선에 이르러야 ‘장타왕’에 등극할 수 있다. 장타는 ‘운칠기삼’이라고 말하지만 장타왕이 되기 위해선 운도, 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본선은 마치 정식 투어를 연상시키듯 많은 갤러리와 관심을 받았다. 대회는 야구장에서 화끈한 타격전을 보는 듯 화려하고 멋있었다. 380야드를 때리면, 다른 쪽에선 390를 때려내 승부를 뒤집고, 다시 400야드를 넘겨 대회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너무 세게 친 볼은 수시로 옆집을 드나들었지만 선수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방’에 심취했다. 10번을 실패하고 단 한번 성공해도 ‘굿샷’을 연호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본선에 오른 24명의 장타자는 마치 결투에 참가하는 전사 같았다. “400야드를 넘기겠다”, “볼을 부숴버리겠다”는 등의 허풍(?)을 떨기도 했지만 각오만은 비장했다. 허풍은 금세 탄로 나고 만다. “400야드를 넘기겠다”고 호언장담한 한 선수는 6차례 시도를 모두 실패하면서 체면을 구기기 일쑤다.
그렇다고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선수의 장타에 함께 열광하면서 환호하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에 버금갔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유명 스타라도 된 듯 의기양양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된 장타대결은 오후 4시가 돼서야 마지막 결승전을 치렀다. 여성부와 시니어부 장타왕이 가려졌고, 남은 건 챔피언부의 장타왕이었다. 결승전은 미니 한일전 양상으로 치러졌다. 지난해 장타왕 박성호(19)와 일본의 나이토우 다카시가 ‘왕중왕’ 자리를 놓고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였다. 장내 스피커에서는 연방 록밴드 ‘퀸’의 노래가 흘러 나와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갤러리의 시선은 선수들의 스윙 하나 하나에 집중됐다.
국내에서는 선수가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이곳에서는 환호와 열광하며 흥을 돋우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갤러리의 탄성은 박성호의 세 번째 티샷이 허공을 가르자 절정에 이르렀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는 하늘 높은 곳에서 빛(?)을 발산하며 사라졌고, 모두가 숨을 죽이며 볼을 찾았다. 곧 이어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박성호! 404야드.” 환호와 탄성, 박수가 어우러져 장내는 금세 달아올랐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이 한방으로 승부는 결정됐고, 박성호는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미니 한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장타비법은 강하면서 부드러워야”
장타에 필요한 건 오로지 ‘한방’이다.
장타는 단순하게 세게 쳐서 되는 게 아니다. 힘과 스피드, 그리고 기술(장비)이 결합되어야 가능하다. 장타대회에 모인 장타자들은 하나 같이 “한마디로 강하면서 부드러워야 한다”고 장타의 비법을 소개했다.
힘과 스피드는 볼 초속을 결정짓는다.
클럽 헤드로 볼을 칠 때 생성되는 볼 초속이 빠를수록 더 멀리 날아간다.
얼마나 강하고 빠르게 스윙하느냐에 따라 볼 초속은 변한다. 클럽은 +α의 효과다. 클럽의 길이와 헤드의 반발력에 따라 +α의 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장타자들은 클럽을 애지중지한다. 장타자들의 클럽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균 길이 48∼50인치 샤프트에, 강도는 ‘더블X’에서 ‘쿼드러플X’를 쓴다. 헤드의 로프트도 5∼7°를 사용한다. 보통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사용하는 44∼46인치 샤프트에 R, S의 샤프트를 사용하면 몇 번의 연습만으로 두 동강 내기 일쑤다. 헤드를 깨먹는 일은 부지기수다.
한국장타자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공평한은 올 들어서만 벌써 4개의 드라이버를 깨뜨렸고, 국내대회 결승전에서는 샤프트를 부러뜨리는 괴력을 선보였다.
따라서 장타자들은 일반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라 특별히 주문 생산된 피팅 클럽을 사용한다. 이런 클럽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일반인보다 몇 배의 힘을 필요로 한다.
체격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쿼트러플X 강도의 샤프트를 휘두르기 위해선 헤드스피드가 최소 120Km/h 이상 나와야한다.
우승을 차지한 박성호는 192cm에 85kg으로 장타자에게 적합한 체격조건을 갖추고 있다. 평균 헤드스피드는 130Km/h이다. 볼을 올려놓는 티(Tee) 역시 일반 제품보다 2∼3cm 더 긴 10cm짜리를 사용한다.
스윙도 다르다. 교과서적인 스윙으로는 절대 400야드씩 날리는 장타를 구사할 수 없다. 장타왕 박성호는 “긴 클럽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립과 스윙궤도, 구질 등을 익혀야 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스트레이트 구질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드로가 장타에 효과적”이라고 장타 비결을 밝혔다.
시즈오카|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