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0일 오후 6시. 데번에 있는 야생 공원에 어머니와 함께 도착했다. 차에서 내릴 때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늑대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동생 덩컨은 집의 모든 불을 환하게 켜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것을 확인한 뒤 덩컨과 나는 집밖으로 나갔다. 불빛이 닿는 곳에는 크기가 각각 다른 눈빛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호랑이들이 눈에 띄었다. 나와 덩컨의 덩치를 합한 것보다 큰 호랑이들이 우리 속에서 포효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아서 집 쪽으로 향했다. 늑대들이 섬뜩한 야간 합창을 시작했다. 부엉이들이 울어댔고 독수리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미국에서 최근 출간된 ‘우리가 동물원을 샀어요(We bought a zoo)’라는 책의 서문 일부분이다. 제목대로 동물원을 구입한 가족의 이야기다. 소설처럼 들리지만 영국 남서부 데번에서 있었던 실화다.
저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DIY(Do It Yourself·직접 만들기)’에 관한 글을 연재하던 칼럼니스트 벤저민 미 씨. 그는 “미쳤다”는 주변의 반응을 딛고 우여곡절 끝에 동물원을 인수한 뒤 재단장해 문을 열게 된 과정을 자세히 책에 기록했다.
미 씨가 동물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의 일. 가족이 살 새집을 찾던 중 우연히 매물로 나온 허름한 동물원을 알게 됐다. 그는 동물행동학을 공부하긴 했어도 동물원 경영은 꿈조차 꿔보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몽상이라고 여겼지만 점점 인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책에서 털어놨다. 그해 첫 입찰에선 동물원을 해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도 했다.
결국 동물원 인수에 성공한 미 씨는 2006년 어머니와 동생, 아내, 그리고 6세, 4세이던 아들과 딸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이사했다. 새로운 이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베리아 호랑이 5마리, 아프리카 사자 4마리, 늑대 9마리, 곰 3마리, 퓨마 2마리, 원숭이들과 보아 뱀들, 독거미까지. 동물 식구는 모두 200여 마리였다.
가족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 허물어진 동물원을 되살려서 다시 문을 여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호랑이들은 툭하면 우리를 탈출했고, 재정은 점점 빠듯해졌다. 그 와중에 아내 캐서린이 뇌암 재발로 세상을 떴다. 미 씨는 “너무 슬퍼서 동물원을 포기할까도 했지만 동물들이 주는 치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효기간이 지난 야채와 과일을 공짜로 제공해 준 슈퍼마켓을 비롯해 주변에서도 힘을 보탰다. 마침내 2007년 7월 미 씨 가족은 ‘다트무어 동물공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재단장한 동물원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자연보호와 교육이라는 테마를 내세운 동물원은 지역의 인기 나들이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는 “돈을 벌려는 욕심은 없으며 아내와의 기억, 우리 가족의 꿈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면서 “아내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끈끈한 가족애, 동물에 대한 사랑 등을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