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포르테’. 나성엽 기자
차량 구입을 고려중인 주부 김 모(37)씨는 최근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차량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고르는 중이다. 하지만 "비슷한 차들이 워낙 많아서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비싼 수입차인 줄 알고 '저 차는 아무래도 못 사겠지?'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난 뒤 알고 보면 국산차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반대로 너무 흔하고 싼 티가 난다고 생각한 모델이 알고 보면 적금을 깨도 사기 힘든 수입차인 경우도 허다하구요."
최근 국내 및 수입 차량의 디자인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김 씨처럼 차종을 헷갈려하는 운전자도 함께 느는 추세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자동차 폐인'으로 불리는 회사원 조모(40)씨는 "가까이서 보면 물론 구분이 가능하지만, 주행 중에 보면 실제로 헷갈리는 모델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마니아들이 혼동하는 대표적 차종은 최근 기아자동차에서 내놓은 준중형 승용차 '포르테'의 뒷모습.
이 차량의 뒷모습은 앞서 시판중인 렉서스 IS 시리즈와 유사하다. 멀리서 보면 차종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리어램프 디자인과 범퍼, 뒷 유리 등의 디자인이 비슷하다.
옆으로 누운 사다리꼴 리어램프의 일부 꼭짓점 각도가 다르다는 게 그나마 식별 가능한 차이점이다.
11월 1일 시판 예정인 GM대우의 신형 라세티의 앞모습은 2008년형 혼다 어코드를 닮았다.
치켜뜬 헤드램프와 각진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와 후드, 앞 유리의 디자인이 비슷해 멀리서 두 차량의 앞모습을 보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현대자동차의 대형 세단 제네시스의 옆모습은 닛산 인피니티 G35의 옆모습과 닮은 점이 많다. 옆에서 본 앞 범퍼와 펜더의 디자인이 비슷하고, 뒷문 유리창의 디자인과 C필라(뒷문 유리와 뒷 유리 사이의 기둥)의 디자인이 유사하다.
현대차 i30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혼다 씨빅의 그릴을 '베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로로 긴 크롬 라인과 이 라인 가운데 아래쪽에 회사의 로고를 위치시킨 디자인이 모방 의혹을 받을 정도로 똑 같다.
반면 '한국차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는 수입차도 있다. 도요타 렉서스 ES 시리즈는 시판 직후 독일 언론들로부터 "뒷모습이 한국 NF쏘나타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서로 다른 브랜드의 차량 디자인이 닮아가는 추세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계절 따라 유행이 바뀌는 패션 디자인처럼 이제 자동차 디자인도 소비자들의 감성에 부합해 시기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유행을 선도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내놓는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를 다른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따라가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면서 "차량 디자인이 평준화함에 따라 차를 고를 때 모양 보다는 성능이나 안전을 더욱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영상 : 나성엽 기자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