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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테뉴어

입력 | 2008-09-24 03:00:00


우리 사회에 테뉴어(tenure·정년보장) 제도가 각인된 것은 서남표 총장의 KAIST가 지난해 테뉴어 신청 교수 중 39.5%를 탈락시키면서부터다. 그 전만 해도 한국 대학에선 테뉴어 심사가 요식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서 총장은 40%에 육박하는 테뉴어 탈락률이 대학가에 파문을 일으키자 “테뉴어 심사 강화는 KAIST가 세계의 명문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대학들이 테뉴어 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학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수라는 직업의 안전성이 보장되어야만 사회적 편견, 정부나 대학당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비인기 전공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선 대체로 조교수들이 테뉴어 심사를 받기 때문에 조교수 연구실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테뉴어 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마누라가 도망가고 없다’는 조크가 있을 정도다. 테뉴어 교수는 그만큼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그러나 테뉴어가 점차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교수들이 일단 테뉴어를 받으면 게을러지는지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구 대학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테뉴어 심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테뉴어 심사 때 연구실적과 강의기록, 대학과 사회에 대한 기여뿐 아니라 동료교수와 학생들의 평가까지 반영한다. 둘째, 테뉴어 제도를 아예 없애는 것이다.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가 대학 개혁조치의 하나로 테뉴어를 축소한 이래 이런 추세는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다.

▷KAIST의 ‘테뉴어 쇼크’가 올해엔 서울대를 강타했다. 2학기 정교수 승진 대상자(부교수) 81명과 부교수 승진 대상자(조교수) 63명 등 모두 144명 가운데 33.3%인 48명이 강화된 심사기준에 따라 단과대 심사에서 탈락했거나 스스로 신청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번에 승진심사를 통과해 부교수가 된 47명 가운데 3명은 빛나는 연구업적으로 조기(早期) 테뉴어를 획득했다. 테뉴어가 엄격하게 관리되는 대학만이 세계 속의 명문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음을 서울대가 보여줬으면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