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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오명철]생긴 대로, 겸손하게, 베풀며 살기

입력 | 2008-09-25 02:45:00


살다 보면 이런저런 좌우명들을 보거나 듣게 된다. 신선하고 감동적이어서 힘과 위로를 받게 되는 메시지도 있지만, 때론 너무 거창하거나 번지르르해 차라리 안 본 것만 못한 메시지도 있다. 촌철살인과도 같이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를 만날 때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허무주의적인 메시지를 만나면 느닷없이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평소 주변에서 보고 기억해 둔 내 나름의 의미 있는 좌우명 세 가지를 소개한다.

의미 있는 좌우명 세 가지

○ ‘생긴 대로 살자’

참한 후배 여기자의 책상 위에 있는 문구다. 어느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라고 한다. 곱씹어 볼수록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물론 성형수술을 하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분수에 맞게 살자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 많은 경우 불행의 대부분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따라 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류와 ‘짝퉁’은 결코 명품이 아닌데도 말이다. 돈 학벌 용모 등 오늘의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핵심 요소들은 모두 재벌 수재 연예인 등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순위 7위를 기록한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형편없이 낮은 것도 결국은 ‘생긴 대로 살지 못하는’ 한국인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한국을 잘 아는 어느 외국인이 “한국 사람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한 것은 한국인의 이런 성향을 족집게처럼 집어낸 말이다. 후배 기자는 “불교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씀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우주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남을 닮으려 하거나 따라 하지 말고 내 개성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는 의미로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

‘각시탈’ ‘타짜’ ‘식객’ 등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서울 강남구 자곡동 화실 책상 옆 벽면에 붙어 있는 문구다. 10여 년 전 허 화백이 직접 사인펜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당시 한창 히트작을 내놓고 있던 허 화백은 어느 날 불현듯 남을 무시하곤 하는 자신을 발견한 뒤 이 문구를 써 붙였다고 한다. 허 화백은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주위 사람들로부터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여수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인기 만화가가 되다 보니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소리가 들려와 내 스스로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도 오만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문구를 보며 자신을 들여다본다고 한다. 그가 무시해서 안 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비단 동료 만화가들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한두 가지는 나보다 나은 점이 있으며, 심지어 ‘타짜’나 건달의 세계에서도 뭔가는 배울 대목이 있더라는 것이다. 허 화백이 책상 옆의 좌우명 문구를 수시로 되새기는 한 그의 만화는 오래도록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눌 것, 물질만이 아니다

○ ‘부자로 죽지 말고, 부자로 살아라’

평소 즐겨 가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 음식점 2층 귀퉁이에 적혀 있는 문구다. 어느 유명 광고회사 사장이 친필로 적어 놓고 간 것이라고 한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곰곰 음미해 볼 만한 문구다. 나누고 베풀어야 할 것은 비단 물질만이 아니다. 정신 지식 재주 봉사 등으로도 얼마든지 ‘베푸는 부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요즘은 기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죽을 때까지 모든 재산을 움켜쥐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부를 축적한 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자식들이 남남처럼 멀어지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부자들은 말한다. “거저 부자가 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또 부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나 하느냐”고. 가난한 이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찌됐든 부자가 되기도 힘들지만, 부자로 사는 것도 어렵다. 무엇보다 부자로 죽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