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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3년 수원 초등교 매몰 참사

입력 | 2008-09-25 02:45:00


1970년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자유학습의 날’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다. 학교 뒷산에 올라 송충이를 잡아 병에 담아오고 화단 청소나 운동장 땅 고르기 같은 보수작업은 자유학습 시간의 단골 메뉴였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산에 올라 잔디 씨앗을 훑어 병에 모아오기도 했다.

추운 겨울엔 학교에서 10리나 되는 먼 길을 걸어 누구 밭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리밭에서 열 지어 보리밟기를 한 기억도 생생하다. 한겨울에 보리 순을 밟아야 얼어 죽지 않고 보리가 제대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역시 자유학습의 날이었다.

중학교 땐 전교생이 체육복 차림으로 근처 시냇가로 몰려가 무거운 돌을 주워 나른 적도 있다. 학교 건물 신축공사에 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게으름 피우는 것을 막기 위해 선생님들은 돌을 가져올 때마다 손목에 도장을 찍어줬다. 할당량을 다 채운 아이들에겐 휴식시간이 주어졌지만 행동이 굼뜬 애들은 온종일 끙끙대야 했다. 자유학습의 날에 집에서 호미나 가래 낫 같은 연장을 들고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금 학생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면 부모들이 펄쩍 뛰겠지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였던 당시엔 학생들의 사역(使役)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는 없었다.

방과 후 소를 몰고 뒷동산에 올라가 꼴을 먹이는 일은 집안 막내 초등학생 몫이었던 시절, 아이들의 노동이 생활화됐던 1970년대 시골 학교의 자유학습의 날에 이 같은 풍경은 낯익은 모습이었다.

1972년 11월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자유학습의 날’이 이처럼 시골에선 노동하는 날로 변질되면서 1973년 가을 경기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다. 이 해 9월의 한 토요일 자유학습의 날에 수원 파장초등학교 4, 5, 6학년생들이 학교 교실 뒤 언덕을 파다가 흙이 갑자기 무너져 9명이 매몰돼 숨지고 12명은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아침 4∼6학년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태권도 실습을 하다가 오전 11시 30분부터 100여 명이 학교 뒤 언덕 밑에 모여 흙을 파던 중 참변을 당했다. 운동장을 돋우려는 학교 미화작업에 흙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고 현장엔 교사도 배치돼 있지 않았다.

사고 학생이 가장 많았던 4학년생 자유학습시간 계획서를 보자. 아동협의회(9시 25분∼10시 10분)와 태권도 실습(10시 20분∼11시 5분) 오락회(11시 5∼50분) 글짓기대회(11시 50분∼12시 45분)로 짜여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화장실 푸기와 쓰레기 치우기, 실습딸기밭 도랑정리, 퇴비장 정지작업에 동원됐다. 작업이 부진한 아이들은 토끼뜀까지 해야 했다.

미국에선 방과 후 교내 운동클럽에 가입하거나 단체소풍을 갈 때 반드시 사전에 부모동의서를 내야 한다. 또 비상 상황에 대비해 주치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적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한국에선 아이들이 자유학습이란 미명 아래 노동의 현장에 내몰려야만 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