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0시 반경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옆 천막.
촛불소녀 조형물과 촛불,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들이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 수배자들의 천막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막 안엔 빨래가 널려 있었고 옷가지, 음료수병, 책, 짐, 이불 등으로 어지러웠다. 일부는 침낭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일부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 몰래 들어온 것은 22일 오후. 조계사 주변 경찰력은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비교적 평온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들어온 뒤 조계사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사실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의 농성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 위원장까지 들어와 정말 당혹스럽다"며 "이제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모두들 공감하고 있어 이에 대한 논의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배자들과 선을 분명히 그었다.
"종교 단체의 특성상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죠. 그러나 조계종에서 수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건 아닙니다. 화장실, 세면 등 생활에 필수적인 사항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죠." 조계종 측은 두 달 전인 7월말 이 위원장이 조계사에 합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을 때 '민노총은 국민대책회의와 달리 정치적인 집단'이라며 합류를 거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 위원장은 조계사 생활에서 제약이 많다. 경찰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다른 수배자들과 달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지하 2층에서 잘 수 없다. 조계사에 타고 들어온 차량이나 천막에서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보니 민노총은 조계종의 눈치를 보고 있다. 2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조계사 내 회의장에서 열 계획이었지만 조계종 측의 반대로 경내 찻집에서 열었다. 25일 조계사에서 열기로 했던 하반기 사업발표 및 위원장 기자간담회도 취소했다.
신도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는 편이다.
최모(62) 씨는 "걸핏 하면 파업을 하는 민노총을 조계종이 보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황모(44) 씨도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자랑스러운 유적지 조계사에 천막 농성단이 있는 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모(43) 씨는 "종교단체의 입장에서 약간 불편하더라도 피신한 사람들을 내몰 수는 없다"며 "제 발로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농성이 80일째를 넘기면서 수배자들의 표정에도 지친 모습이 뚜렷하다. 이른 아침 108배를 하던 과거 모습과는 달리 25일 수배자들이 머무는 천막은 오전 9시 반이 되어서야 열렸다.
이 시간 이 위원장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혼자 앉아 서류와 책을 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