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다하루(왕정치) 소프트뱅크 감독의 자진 사퇴 이유론 체력 한계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기다 후반기 들어 팀이 5위까지 순위가 내려가자 정신적 압박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선수나 코치도 감독의 마지막 시즌을 예감하고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부담을 가진 게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한 점도 있다.
그러나 오사다하루 감독의 야구 열정이 워낙 강하기에 2009년 제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감독직 가능성은 남아있다. 소프트뱅크 후임 감독으로는 수석코치인 아키야마 고지가 유력 후보이지만 손정의(마사요시손) 회장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외국인 감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미우리 현역 시절 868홈런을 쳐낸 당대의 스타였지만 오사다하루는 감독으로서도 일본야구의 전례를 깼다. ‘요미우리 감독을 맡으면 다른 팀 감독으로 못 간다’라던 그 동안의 관례가 오사다하루 감독의 다이에(소프트뱅크의 전신) 감독 취임으로 깨졌다. 이런 야구 열정은 1999년과 2003년 일본시리즈 우승, 2006년 WBC 우승으로 빛을 발했다.
오사다하루의 사퇴는 전격적이어서 놀랍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홈구장 후쿠오카 돔 최종전에 맞춰 사퇴를 발표했고, 선수들의 헹가래도 받았다. 그러나 잔여 원정경기까지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요미우리 유망주였을 때 오사다하루는 팀 내 대선배였는데 1960년대 미야자키 캠프부터 원정까지 1년간 룸메이트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오사다하루 선배는 경기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호텔 방안에서 스윙 연습을 반복했는데 마치 실전 투수 공을 상대하는 것처럼 진지했었다. 야구를 향한 엄격함과 열렬함으로 각인된 선배였다.
오사다하루의 퇴장으로 이제 나가시마, 모리에 이르기까지 요미우리 V9 멤버는 전부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동시대 인물론 라쿠텐 노무라 감독이 남아있지만 오사다하루의 은퇴는 일본야구 세대교체의 전환점으로 기억될 만하다.
스포츠동아 일본통신원
84년부터 3년간 한국 프로야구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일본으로 돌아가 요코하마, 다이에와 야쿠르트를 거친 뒤 92년 은퇴했다.
[관련기사]‘팽’ 당한 호시노, 현장복귀도 없다?
[관련기사]승엽 창용 병규를 보는 일본의 눈
[관련기사]불펜보강 최우선…승엽에 불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