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3’ 그림=윤정주, 비룡소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이 너무나 협소하고 생활 또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의미한 나날이 하염없이 반복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에게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습니다. 뗏목이었습니다. 뗏목 하나만 있다면 강에서 바다로 나가 오대양 육대주를 기분 내키는 대로 들락거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해서 가장 넓고 눈부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서 뗏목 하나를 엮어 강물에 띄우고 무작정 올라탔습니다. 뗏목은 애써 노를 젓지 않아도 물결을 따라 하류로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배가 고프면 준비해온 낚싯대를 드리워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뗏목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처음 집을 나설 때 뗏목에 같이 실었던 암탉 한 마리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병아리가 태어나면, 그 병아리를 길러 고기 맛을 볼 작정이었습니다.
뗏목은 당장 바다로 나가지 않고 이 강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강의 어귀로 흘러들어 오랫동안 떠돌았습니다. 배고픔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탄에 잠기거나, 조롱당하거나, 공포에 떨 필요가 없는 초연한 생활이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고속정 한 대가 물살을 가르고 턱밑까지 다가와 그의 뗏목생활을 빠짐없이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던 그들은 무려 열흘 동안이나 뗏목을 뒤쫓아 다녔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더 큰 문제가 그에게 닥쳤습니다. 어찌 된 셈인지 뗏목이 흘러가는 강가에는 군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그를 칭송하고 격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함치며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선물을 던지고, 일년 넘게 강물 위에서만 견뎌낸 그에게 영웅의 호칭을 붙여주고, 철학자로 불러주며,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의지의 사나이로 치켜세웠습니다.
이제 강물 밖에서의 그의 존재는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뗏목을 벗어나 뭍에 오른다면 그 순간부터 밤낮으로 야단법석을 떨던 군중도, 경쟁적으로 촬영을 해대던 카메라도 모두 그를 비웃거나, 조롱하고 사기꾼으로 몰아 침을 뱉거나, 폭력을 휘두를 게 뻔했습니다. 이젠 뗏목 타기에도 진력이 났으나, 뭍으로 단 한 발짝도 올라갈 수 없는 자신의 애꿎은 처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