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살핌/셸리 테일러 지음·임지원 옮김/448쪽·1만8000원·사이언스북스
인간은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투쟁하거나 도피한다고 설명해 왔다. 투쟁을 선택한 쪽은 상대를 쓰러뜨리려 하고 도피를 원한 쪽은 신경질을 내면서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간 본성은 여러 임상 시험을 통해 증명됐다.
그러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사회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이 통설에 반대한다. 동물 집단의 관찰 연구, 인간 대상의 임상 시험, 역학 조사, 사회 통계 자료 등을 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고 친밀해지려는 본성도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서 더 뚜렷하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그동안 많은 동물이나 인간 임상 시험이 수컷과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성 유전자에 다른 이를 돌보고 보살피며 사회적 유대감을 높이려는 본성이 각인돼 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생물학적 증거로 제시된 것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주로 출산 때 분비되며 젖의 생산을 촉진시키는 이 호르몬은 진정제와 같다. 출산이라는 스트레스에 평온하게 대처하도록 도와준다. 케임브리지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옥시토신 주사를 맞은 어미 양들이 새끼 양들을 더 자주 보듬고 핥아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혈중 옥시토신 양이 많은 여성일수록 차분하고 사교적이다. 반면 남성은 스트레스 상황 때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됐다.
여성에게 더 많은 ‘보살핌의 본능’은 남녀의 사회적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남성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동성 친구들보다 여자 친구, 아내, 어머니에게서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는 것.
이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려는 여성의 본성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 실험 과정에서 암컷 쥐들을 다섯 마리씩 함께 같은 우리에 넣었더니 한 마리씩 넣었을 때보다 수명이 40% 늘어났다. 서로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따로 한 마리씩 넣어야 하는 수컷 쥐와는 확연히 달랐다.
저자는 보살핌의 효과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케임브리지대의 한 과학자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양실조 상태에 놓인 보육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의 발육을 결정한 것은 좋은 음식이 아니라 원장의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보살핌이 어린이의 건강과 성격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인 것이다.
저자는 여성의 ‘보살핌의 본능’이라는 주제가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려는 고리타분한 통념과 다르다며 남성과 여성을 동일한 틀에 끼워 맞추려 하다가 ‘보살핌의 본능’의 가치를 부인하는 ‘슬픈 부산물’이 생겼다고 말한다. 원제 ‘보살핌의 본능(Tending Instinct·2002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