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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늦둥이맘’ 17세 ‘리틀맘’ 마주 앉다

입력 | 2008-09-28 09:59:00

정혜숙(왼쪽) 씨와 박지영 씨는 20살의 나이차를 넘어 만나자마자 \'수다쟁이 엄마들\'이 되었다 우경임 기자

“어린 엄마지만 모성애는 다를 바 없어요.” 17살에 엄마가 된 ‘리틀맘’ 박지영 씨.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행복”이라는 ‘늦둥이맘’ 정혜숙 씨.


38살에 첫 딸 '현서'를 출산한 '늦둥이맘' 정혜숙(40)씨와 17살에 첫 아들 '윤설'을 출산한 '리틀맘' 박지영(19)씨가 23일 광화문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출산 '적령기'에 아이를 낳는 관습은 깨어진지 오래. 두 사람의 늦고 빠른 출산이 달라진 문화를 보여준다. 두 사람은 남다른 출산육아 체험기를 모은 책인 '엄마, 나 낳을 때 아팠어?'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면서 서로 만났다.

모든 엄마의 육아 경험은 책 한 권은 차고 넘친다지만 그런 보물 같은 아이들을 낳기까지 정씨와 박씨가 겪은 출산 경험은 남달랐다.

소위 '노산'을 한 정씨는 병원에서나 집에서나 나이 많은 임산부를 기형 출산율이 높은 환자로만 보는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양수 검사 등 갖가지 검사를 다 했어요. 매번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요.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할 때도 '나이가 많아 모유가 잘 안 도는 것 같다'는 식의 말을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큰 상처가 되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 냉동 저장 할 수 있을 만큼 잘 나오는데 얼마나 억울하던지…."

앳된 얼굴에 잔뜩 부른 배.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 혀를 끌끌 차는 사람 등 남들의 시선이 따가웠던 것은 사춘기 때 '사고'를 쳐 아이를 낳은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같이 쳐다보기도 했지만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다스리곤 했어요. 익숙해지니까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리틀 맘' 박씨는 아이를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뱃속에서 꼬물꼬물 거리는 모습을 초음파로 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어요. 비록 결혼식도 못 올리고 가정을 꾸렸지만 엄마가 될 자신이 있었죠. 아이를 키우면서 음악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요."

현재 육아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는 정씨,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며 직장을 다니는 박씨는 모두 '워킹 맘'이기도 하다.

정씨는 불규칙한 퇴근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입주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다. 낮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 하는 대신 밤에는 꼭 아이와 함께 자려고 한다. 몸은 녹초가 되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사실 주말이 무서워요. 집안 일 하랴, 아이랑 놀아 주랴 젊은 나이도 아니고 체력이 많이 딸리죠. 그래서 더 건강관리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박씨는 아이를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시댁에 맡겨 본 적도 있고 아이 돌보미를 구하기도 했지만 양육자가 너무 자주 바뀌어 아이의 스트레스가 크다는 병원 진단을 받은 뒤 어린이집에 보낸다. 대신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에는 아이에게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육아책도 보고 육아 커뮤니티에도 가입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철없는 엄마 아래서 불쌍하게 자란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엄마로서의 의무에 최선을 다했어요."

좋은 엄마가 되자고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도 어찌 눈물 쏟을 만큼 힘든 일이 없었을까.

정씨는 잡지 마감 때문에 아이 얼굴도 못 본 채 내리 야근을 했던 날을 떠올린다. 매일 달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 한지 일 주일. 이가 두 개 막 나기 시작한 현서의 얼굴이 까칠하게 마르고 입술까지 갈라졌다.

"정말 그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어요? 마감 직후 일주일간 눈 딱 감고 6시면 '칼 퇴근'을 해서 먹이고 씻기고 했더니 아이가 다시 밝아지더라구요."

박씨는 윤설이가 5개월 때 '장 중첩증'으로 수술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금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가 수술 끝나고 나오더니 목이 쉬고 혀가 말라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아이에겐 진통제를 놔 주지 않아 마취가 깨면 엄청 고통스럽다는 거예요. 아이를 앉고 마냥 같이 울었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을지도 모르는 '늦둥이 맘,'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적은 '리틀 맘'은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남다르다.

"늦게 결혼했으니 누릴만한 즐거움은 다 누려 봤죠. 일도 신나게 했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런데 아이는 그런 기쁨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어요. 늦둥이라 집착이 커질까 봐 독립적인 인간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요. 확률적으로 다른 부모들보다 아이랑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 주는데 교육의 초점을 맞추죠." (정)

"가장 좋은 교육법은 아이와 의사소통을 잘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희 아버지도 저를 그런 믿음으로 지켜봐 주셨기 때문에 이른 나이에 자퇴하고 결혼하고 해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 노래 잘해, 우리 엄마 일도 잘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윤설이는 제 삶의 이유죠."(박)

그러나 후배 '늦둥이 맘'과 '리틀 맘' 들에게는 냉정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가능하면 빨리 낳으라고 하고 싶어요. 노산이 일반화 되었지만 아이나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는 미룰 이유가 없어요. 나이가 들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육아가 능숙할 것이라는 건 환상이더라고요. 오히려 늦게 낳으면 마음만 조급해지죠."(정)

정씨는 이왕 늦게 낳게 되었다면 아이한테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 볼 것을 권한다. 늦둥이에 지나친 관심은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박씨는 "능력을 갖추기 전엔 아이를 낳지 마라"고 독하게 말한다. 주변에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못 해 어렵게 사는 '리틀 맘'들을 너무 많이 봐서다.

"저도 낭만에 젖어 결혼하고 아기를 낳았어요. 다행히 시댁도 도와주시고 남편도 저도 일을 해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될 것이 많아요."

박씨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아이를 낳는 것에 신중해야 하며, 낳을 수밖에 없다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라"고 현실적인 충고를 던졌다.

"주변 '리틀 맘'들에게 임신기간 중에 대학 졸업하고, 아이 태어나면 나가 일하라고 해요. 요즘 중졸, 고졸 학력으로는 일자리 구하기 힘들잖아요.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엄마가 될 수 있어요."

'늦둥이맘' vs '리틀맘'. 그것은 그저 세상이 붙인 이름일 뿐이다. 나이를 넘어 그들은 '엄마'일 뿐이었다. 사랑을 가득 가슴에 품은 바로 '엄마.'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