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호기롭게 세상을 바꿔보겠노라 소리쳤다. 처음 맛보는 자유의 달콤함도 마음껏 누렸다. 2학년. 선배가 된다는 설렘이 있었다. 신입생의 어수룩함에 나는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3학년. 군대를 만났다. 입대 전 세상을 원망하며 친구와 술로 마음을 달랬다. 전역 후에는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4학년이 됐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만큼 4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컸다. 생각(사·思)이 많아졌고 나에게 맞는 일(사·事)을 찾아야 했다. 가고 싶은 회사(사·社)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꿈을 쉽게 버리지(사·捨) 못했다. 사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단순히 취직에 의의를 둔 학생이 더 많았다.
이선 호크의 책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어릴 때는 모든 사람이, 온 세상이, 너의 꿈을 좇으라고 격려해 주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꿈을 찾아가려고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몹시 불쾌해한단 말이야.”
사실 그랬다. 언제부턴가 꿈을 이야기할 때 직업의 형태로 말해야 했다. 꿈이 뭐냐는 친구의 물음에 “여러 가지인데, 세계일주도 하고 싶고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싶고, 또…”라고 말하면 이내 한심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야, 그런 거 말고, 뭐해서 먹고살 거냐고! 취직 안 해?”
토익과 어학연수, 그리고 자격증. 어느덧 졸업생의 필수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학원은 학생으로 북적거리고 도서관은 토익 책을 보는 학생으로 가득 찼다. 왜 토익 시험이 있는 날이면 도서관은 한산해질까? ‘토폐인’이란 조어도 생겼다. 토익이 만병통치약인 줄 알고 매진했으나 취업에 실패해 폐인이 된 학생을 말한다.
이른바 ‘스펙’이 중요했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거리(?)를 찾아다닌다. 봉사활동, 인턴 경험, 공모전 응시도 그 자체의 의미보다 취업을 위한 도구로 변해간다.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도서관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학생회관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방학을 맞아 동아리는 분주해진다. 개강 후 열릴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하는 아련함과 이럴 때가 아닌데 하는 걱정이 생긴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더 크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열정이 부러웠고 가슴속에 눌러 놓은 청춘의 뜨거움이 아쉬웠다.
새뮤얼 울먼의 말처럼 ‘청춘은 어떤 일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람과 사물에 대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열정일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써 마음을 달래 보지만 쉽지 않다. 이내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일어났다. 이 시기를 거쳐 간 사람이 위대해 보이는 하루다.
최기형 중앙대 전자전기공학과 4학년 본보 대학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