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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채연석]신기전, 세계 최초의 로켓탄

입력 | 2008-09-29 02:59:00


영화 ‘신기전(神機箭)’이 많은 화제를 부르고 있다. 사실 신기전은 내 분신과 같다. 어려서부터 로켓이 좋아 고1 때 로켓을 만들어 시험하다가 폭발하여 고막을 잃으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로켓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1975년 11월 역사학회에서 ‘주화와 신기전 연구-한국 초기(1377∼1600) 로켓 연구’를 발표하여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로켓이 있었음을 처음 밝혔다.

그동안의 연구에 의하면 세종 30년(1448년)에 우리나라에서 신기전을 만들기 전까지 세계 4, 5곳에서 로켓을 만들어 사용했다. 로켓의 제작 설계도가 남아 있는 사례는 없고 전투에 사용했다는 기록이나 간단한 그림이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규모나 성능을 알거나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

천만다행으로 우리의 로켓 신기전은 상세한 제작설계 자료가 남아 있어서 복원 및 발사시험이 가능하다. 신기전의 설계 기법은 지금의 기계설계 기법과 똑같다. 최소 길이 단위가 0.3mm인 리(釐)를 사용하는 점도 경탄할 만한 일이다. 신기전은 네 가지가 있었는데 소·중신기전은 사정거리가 100∼250m 정도여서 적과 접근해서 싸우는 전투에서 무척 효과적이었다.

대신기전이나 산화신기전은 압록강이나 두만강 건너에서 진을 치고 침략하려고 준비 중인 오랑캐에게 발사하여 적을 제압할 때 사용했던 무기다. 때문에 사정거리가 강을 건널 수 있는 600m 이상의 대형 로켓이 필요했다. 대신기전은 중신기전보다 65배나 많은 3kg의 추진제를 사용했다. 당시 가장 큰 포였던 장군화통보다도 3배나 많은 화약을 사용했다.

중신기전이나 대신기전 또는 산화신기전의 앞부분에는 폭탄을 장치했는데 당시 로켓의 앞부분에 지금의 미사일처럼 폭탄을 장치하여 발사했던 것은 신기전이 처음이다. 초기의 로켓인 주화는 폭탄을 달지 않았는데 세종 29년(1447년)에 처음으로 폭탄을 단 로켓이 등장한다. 길이 5.5m의 초대형 로켓탄이 굉음을 내고 불을 뿜으면서 수백 m의 강을 수초 만에 건너가 떨어진 후 불을 뿜고 있다가 폭탄이 터지는데 도망가지 않을 오랑캐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 ‘신기전’에서 대신기전의 발사 모습을 보고 성능이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성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대신기전은 자랑스럽게도 세계 최대의 종이약통 로켓이며 세계 최초의 로켓탄이다. 또 세계에서 제작설계도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로켓이다. 세종 때 신기전을 비롯한 우리의 화약무기 수준이 세계 최고였던 점에 비춰보면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였을 것이라는 점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이렇게 훌륭한 대신기전의 수명이 짧았던 이유는 뭘까. 대신기전은 강 건너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인데 세종 때 4군6진(四郡六鎭) 개척이 끝난 뒤 사용 필요성이 많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다. 국경지대가 평화로운 상황에서 파괴력에 비해 화약 사용량이 많은 대신기전을 굳이 가동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로서는 위협적인 무기이기는 하지만 파괴력이나 살상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첨단 무기를 계속 개발하도록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가 가난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생각된다.

유럽에서는 새 무기를 개발하면 유럽 전역에 전파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한반도 내에서의 사용에 그쳤다. 영화 ‘신기전’을 계기로 전통과학기술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가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손재주와 과학기술의 창의성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원동력이었고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채연석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