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인가? 암살인가?
1913년 9월 29일.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던 드레스덴호 갑판 위에서 한 남자의 코트와 모자가 가지런히 정돈된 채 발견됐다.
코트와 모자의 주인은 바로 가솔린 엔진과 더불어 대표적인 내연기관으로 불리는 ‘디젤 엔진’을 개발한 루돌프 디젤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가방공장을 경영하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디젤은 12세 되던 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독일에 정착한다.
아우크스부르크 공업학교와 뮌헨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한 디젤은 열효율이 높은 내연기관 개발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공기 압축으로 발화를 일으켜 엔진을 작동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1893년 특허를 얻는다. 하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상당한 개발 자금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디젤은 실용화 성공 시 판매권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아우크스부르크 기계제작소의 지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험은 쉽게 성공하지 못했고 휘발유를 사용한 첫 실험은 폭발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
연구를 거듭한 그는 1894년 드디어 경유를 연료로 하고 압축, 점화에 의해 작동하는 왕복 운동형 내연기관을 개발하게 된다. 이 엔진은 개발 당시 ‘오일 엔진’으로 불렸지만, 디젤은 개발을 끝낸 뒤 자신의 이름을 붙여 ‘디젤 엔진’이라고 명명했다.
디젤 엔진의 원리는 ‘실린더 내에 공기를 넣고 압축해 고온 고압의 상태를 만들고, 액체 연료를 분사해 자연 발화시키는 방식’으로, 휘발유를 사용한 내연기관보다 연료소비효율이 40% 정도 뛰어났다. 그런데 이 무렵 아우크스부르크 기계제작소가 MAN사에 흡수합병되었기 때문에 그는 디젤 엔진의 판매권을 MAN사에 넘겨야 했다. 하지만 디젤은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공개하기로 마음먹고 계약을 파기해 다른 업체의 사용도 승인하게 된다.
이후 자동차를 비롯하여 농기계, 기차, 선박, 각종 건설기계 등에 디젤 엔진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디젤은 큰돈을 벌게 된다. 디젤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해 갔고 영국에 세워진 공장 준공식을 앞두고 있었다. 1913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그는 영국행 배에 오르지만 실종되고 만다. 그로부터 2주 후 핀란드의 작은 어선이 북해에서 그의 시체를 발견한다. 디젤의 죽음은 특허권 시비로 인한 자살로 마무리됐지만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